I. 여행 계획은 벌써부터 휴지조각으로
2일차 아침이 밝았습니다. 아침 일찍 신칸센을 타기 위해 오카야마역으로 나왔습니다. 하... 그런데 사실 아침부터 기분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을 갈 수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 23년 11월에 방문했던 마이즈루시(市)
원래 계획으로는 2일차에 마이즈루라는 동네에 가려고 했습니다. 작년에 방문했던 바다와 맞닿은 철교를 다시 촬영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작년 방문 때 날씨가 흐렸던 게 못내 아쉬웠거든요.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다시 담고 싶었답니다.
근데 일기예보에 마이즈루는
흐리고 비가 온다더군요.
일정이 2일차부터 꼬이다니...
쩝... 아쉽지만 즉석에서 일정을 개조했습니다.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것도 여행의 한 가지 묘미겠죠. 원래라면 히메지, 오사카 방향으로 가야 했지만, 반대 방향 히로시마, 하카타 방향 승강장으로 올라왔습니다. 오카야마의 하늘은 이렇게나 맑은데 마이즈루는 비가 온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일기예보를 믿고 단념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나중에 알게 되는 사실이 있는데, 2일차에 마이즈루로 가지 않은 것은 오히려 신의 한 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 회차에!
역시 맑은 하늘이 잘 어울리는
타카기 양
승강장에는 어제(1일차)도 본 500계 퍼런 뱀장어가 들어와 있습니다. 500계는 어딜 가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저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한 장씩은 꼭 담고 타더라고요.
이 500계 신칸센은 산요 신칸센에서 최하위 등급인 코다마로만 운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오카야마역에서도 상위 등급 열차인 사쿠라 열차를 먼저 보내기 위해 오래 정차해 있는 중입니다. 덕분에 구석구석 사진을 남깁니다. 저는 굳이 상위 등급 열차를 거르고 이 500계 코다마에 몸을 실었습니다.
왜냐면 500계 신칸센의 8호차 끝에는 장난감(?)이 하나 달려 있거든요~ 8호차면 운전실이 달린 선두칸인데, 운전실로 들어가기 직전 벽면에는 모의 운전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꼬마 친구들에게 인기 만점인 모의 제어대 ㅋㅋㅋ 저도 슬쩍 앉아서 조작해 봤습니다. 좌측부터 제동간(제동력을 제어하는 장치, 브레이크), 가감간(가속도를 제어하는 장치, 엑셀러레이터), 역전간(전후진제어기, 전진/중립/후진을 결정하는 장치)입니다. 생각보다 조작감이 좋더라고요. 실제 차량도 그럴려나? 그나저나 우리나라 수도권 전동차에서는 좌측이 가감간이고 우측이 제동간인데 반대였습니다.
이게 또 신기했던 게 가감간이나 제동간을 조작하면 속도계 패널에 그에 맞춰 가상의 속도가 표출됩니다! 생각보다 디테일이 숨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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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렇게 즉석에서 만든 일정대로 500계 코다마를 타고서
덕산역 토쿠야마역에서 내렸습니다. 역 승강장에서 바다가 보이는군요. 한국에도 똑같은 한자를 쓰는 덕산역이 있다는 건 안 비밀~
토쿠야마역은 곡선에 위치한 역이라서 이 멋들어진 500계 신칸센을 머리부터 꼬리까지 한 컷에 담을 수가 있었습니다. 전기뱀장어가 자꾸 생각나네요.
물론 현실은 신칸센 생태계 최하위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정차할 때마다 후속 열차를 먼저 보내곤 합니다. 철도에서는 이렇게 뒤에 오는 열차를 먼저 보내기 위해 측선에 물러나 있는 걸 선행대피라 부릅니다. 때로는 역에서 두 대, 세 대를 연달아 먼저 보내곤 하죠. 코다마는 그래서 승객들에게 인기가 높지 않습니다.
역을 떠나는 모습도 담아줍니다. 위 500계는 야마구치, 시모노세키를 지나 해저터널을 건너 후쿠오카의 하카타역까지 운행합니다. 저는 이제 이곳 토쿠야마역에서 재래선 열차로 환승할 거랍니다.
"어? 근데 잠시만요,
토쿠야마역이면 지금
타카기 양이 쓰고 있는
간사이 와이드 패스로
커버되는 곳이 아니지 않나요?"
네, 맞습니다... 사실 2일차에는 간사이 와이드 패스가 커버하는 범위 밖으로 나갔답니다. 오카야마에서 신칸센을 타고 히로시마를 넘어 야마구치현까지 갔어요. 쌩돈을 썼다 이거죠 ㅋㅋㅋ
"아니, 패스권 사놓고 왜 딴 데를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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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낭만이 있으니까"
II. 남풍을 타고 달려가🎵
산요 신칸센 토쿠야마역에서 산요 본선 토쿠야마역으로 환승하러 갑니다. JR서일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주황색 떡칠 디젤동차가 보입니다. 진짜 어딜 가나 볼 수 있습니다 ㅋㅋㅋ
에... 그런데 여기서 이벤트 발생, 산요 본선 히로시마 방향으로 운행 장애가 발생했다는 안내 같습니다. 일본어를 읽을 줄은 모르지만 대충 아는 한자만 조합해 해석하면 이와쿠니~니시히로시마 구간 운행 중단 상태고, 오전 11시 정도 되어야 재개될 것 같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살짝 팁, 일본에서 철도 이용 중에 요런 화이트보드를 봤다? 그러면 높은 확률로 인접한 어딘가에 운행 장애가 발생했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제가 갈 곳까지는 열차가 운행하고 있어서 그냥 타면 됐습니다. 휴~ 다행이구만~
열차 타기 전에 자판기를 슥 둘러봅니다. 와우, 오후의 홍차 대용량이 있습니다. 오후의 홍차 대용량이 있는 자판기는 흔치 않은데 ㅠㅠㅠ 보일 때마다 뽑아야 합니다. 고작 170엔이네요!
코레일 자판기 데자와는
작은 캔이 1,600원이던데
역시나 JR서일본 지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노란 똥차입니다. 이 115계 전동차를 타고 조금만 더 달려가면 목적지 도착입니다!
슝슝
토쿠야마역에서 1시간 즈음 히로시마 방향으로 달려오니까 마침내 바다가 보입니다. 내릴 때가 다가왔습니다.
하 차 !
하차한 이곳은 야마구치현 야나이시(市)에 위치한 오바타케역입니다. 바다와 인접한 작은 전철역입니다.
역 안에서 사진을 찍을 건 아니고요, 이제 열심히 걸어서... 하... 진짜 엄청나게 더운데 뚜벅뚜벅 걸어서 해협을 스쳐 지나가는 산요 본선 사진을 담을 수 있는 곳까지 갈 겁니다.
살이 노릇노릇 구워지는 것처럼 뜨거운 날인데 사진은 또 청량하게 나오니 신기한 일입니다.
진짜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광자(photon) 하나하나가 빛의 속도로 날아와 당연한 거 아니냐? 온몸에 비수처럼 꽂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바다를 내려다보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걷고 또 걷습니다.
끝내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야마구치현 야나이시(市)와 야시로 섬 스오오시마초(町)를 잇는 오시마대교라는 다리 위입니다.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걷고 또 걸어온 보람이 있네요 ㅠㅠ 오시마대교 아래로는 산요 본선이 바다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갑니다.
때가 되니 푸른 바다와 대비되는 색감의 노란 완행열차가 와주었네요. 이 모습을 보기 위해서 열심히 육수 쏟으며 왔습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모습이었네요. 미나미노~ 카제니 놋테 하시루와🎵 아~~~ 아오이 카제~🎶
히로시마 방향으로 컨테이너 화차가 두 번 연속으로 지나갑니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컨테이너 화물은 알록달록해서 좋네요. 역시 푸른 바다와 대비되는 색깔이라 좋았습니다.
히로시마 방향으로 운행하는 노란 완행열차를 마지막으로 담고, 다시 돌아갑니다.
오바타케역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방금까지 사진을 찍은 오시마대교가 역에서 내다보입니다.
덜컹이는 완행열차에서 고파스도 하면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면서 다시 토쿠야마역으로 돌아왔습니다. 타고 온 이 열차는 저 멀리 시모노세키까지 가는 차였네요. 어이구, 땅끝마을까지 가는 차였습니다. 바꿔 말하면 숙소가 있는 오카야마에서 즉흥적으로 참 멀리도 왔습니다.
III. 오카야마로 돌아갑시다~ 나는 계획이 없어요
다시 신칸센 승강장으로 올라왔습니다. 또 500계 신칸센이 지나가네요. 이제 햇빛의 각도가 바뀌어서 500계 특유의 푸른 색감이 잘 살아난 것 같습니다. 자, 그런데 이 500계 신칸센은 푸르뎅뎅한 색감만 있는 건 아닙니다! 놀랍게도 이로치 500계가 존재한다구요!
때가 되니 앞서 말씀드린 이로치 500계가 들어오네요!
푸른색이 아닌 핑크색 500계가 들어왔습니다. 사실 전에도 소개한 적이 있었죠? 바로 헬로키티 신칸센입니다.
오전 중 촬영한 푸른 500계를 비교차 다시 첨부합니다.
우리나라도 KTX 중 일부를 이렇게 테마가 있는 열차로 꾸미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열차 자체가 하나의 관광 콘텐츠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헬로키티 신칸센에 대한 더 자세한 탑승기는 여기(링크)로!
한편 반대편 승강장으로는 역시나 500계처럼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된 700계 차량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미 신칸센의 대세는 최신형인 N700계 차량으로 넘어갔고, 이에 구형인 500계와 700계는 최하위 등급 신세를 전전하고 있거든요.
원래는 히카리 레일스타로 운행하기 위한 차량이었지만, 지금은 코다마로 산요 신칸센 구간을 운행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500계와 700계가 아직도 운행하고 있는 덕에 산요 신칸센의 풍경은 도카이도 신칸센에 비해 다채로운 것 같습니다.
철덕들은 이렇게 신차보다
똥차에 더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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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야마로 복귀한 다음에는 어제(1일차) 방문했던 키비츠역 근처 건널목을 다시 찾았습니다. 너무 늦은 시각에 방문해 사진을 충분히 남기지 못 했던 게 못내 아쉬웠거든요.
어제(1일차)는 이런 느낌이었지만
오늘(2일차)은 이런 느낌입니다.
해가 넘어간 뒤 토리이의 느낌은 신비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구분선 같았는데, 아직 햇빛이 남아 있을 때의 느낌은 그보다는 훨씬 따뜻한 느낌이었습니다.
< 오늘의 포인트 >
* 산요 본선과 바다가 만나는 오시마대교
< 덧. >
오카야마로 돌아와서는
간단히(?) 밥을 먹고
다시 신칸센을 타러 들어왔습니다.
"하루 다 지났는데,
갑자기 신칸센을 왜 타요?"
자판기에서 오후의 홍차 뽑으려고요.
"...?? 예?"
그리고 신오사카역에 가서
신칸센 아이스크림 사서 먹으려고요.
"아니, 그깟 아이스크림 먹으러
갑자기 신오사카까지 갔다고요??"
나는 「간사이 와이드 패스」 오우너니까,
타고 싶으면 신칸센을 마음껏 탈 수 있으니까
기대가 컸던 신칸센 아이스크림(스쟈타) 메론맛!
무려 430엔이나 되는데 놀랍게도 맛은
...메로나랑 똑같았습니다.
메로나... 도대체
얼마나 잘 만든 거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