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처음으로 외국에서 보내는 명절
사실 거의 반년 전부터 계획했던 도피(?)였습니다. 민족의 대명절이라고는 하지만, 만나는 친척 어른들의 잔소리, 피곤한 장거리 이동, 시끄러운 조카들 때문...은 사실 아니고 ㅋㅋㅋ 그냥 언젠가 무심코 검색해 본 추석 당일 오사카행 제주항공 티켓이 꽤 저렴하더라고요? 명절과 겹쳐서 출국하는 건 싹 다 비쌀 줄 알았는데, 편도 총액 11만원대인 걸 알게 된 그 순간
그냥 냅다 질렀습니다.
"일단 지르고 생각하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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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래서 글의 시점인 1일차는 9월 17일 추석 당일 화요일입니다. 이번에는 출국하기 전에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 있는 마티나 라운지에서 배를 좀 채우고 시작했습니다! 여태 몰랐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신용카드 중에 공항 라운지 무료 이용 가능 혜택이 있는 게 있더라고요.
왜 여태 몰랐을까...
신용카드 혜택 같은 거 지금껏 별로 관심 없었던 탓에 손해를 보고 있었습니다 ㅠㅠ 이젠 알았으니 기회가 될 때마다 이용하기로...
암튼 라운지에서 열심히 밥을 먹은 후 곧바로 셔틀트레인을 타고 LCC 천국 탑승동으로 넘어갔습니다. 마침 저를 간사이 국제공항까지 데리고 갈 제주항공 B737이 탑승교 연결을 마쳤네요!
싹 다
우리 비행기는 웬일로 출발 예정 시각보다 10분 정도 일찍 탑승이 완료되었고, 기분 좋게 33L 활주로를 내달려 이륙합니다~ 기내 방송으로는 이날 만석이었다고 하네요. 그런데도 늦는 승객 없이 일찍 탑승 완료라니 ㅋㅋㅋ 재미있게도 옆 34L 활주로에서도 우리 비행기와 똑같은 속도로 제주항공 기체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인천을 떠나 1시간 정도 비행하니까 올해 4월에 방문했던 요나고 공항이 지상에 보입니다. 인천 ↔ 요나고는 에어서울에서 운항하고 있으니 참고하세요~
인천 → 간사이는 도쿄까지 가는 것에 비하면 정말 가깝더군요! 창밖으로는
「장난을 잘 치는 타카기 양」
의 배경지 쇼도시마가 보입니다.
이제 생긴 모양만 봐도 알아봄
간사이 국제공항이 가까워지면서 비행기는 고도를 점점 더 낮춥니다. 창밖으로는 세토내해 최대의 섬인 아와지섬(아와지시마)과 나루토 해협을 건너는 현수교(오나루토교)가 보입니다. 나루토 해협은 소용돌이 치는 빠른 조수(나루토 우즈시오, 鳴門渦潮)로 유명한데, 교량 아래로 휘몰아치는 조류가 확 눈에 들어옵니다 ㄷㄷ
"내가 작년에 저길 똥고생하며 건넜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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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간사이 도착!
제주항공은 간사이 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제2여객터미널은 딱 필요한 시설만 조촐하게 갖춘 느낌이라서 탑승교도 없었고 건물도 단촐했습니다. LCC 몇 곳만 이용하는 터미널이라서 그런지 덕분에 일본 입국 과정은 꽤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II. 닥터옐로우로 시작하는 서일본 철덕질
공항 셔틀버스를 타고 간사이 공항역으로 넘어왔습니다. 제일 먼저 이번 여행의 필수품 「간사이 와이드 패스」를 뽑았습니다.
간사이 와이드 패스는 12,000엔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5일 동안 위 범위 내에서 JR서일본의 모든 신칸센, 재래선 특급열차, 보통열차를 무제한 탑승할 수 있는 티켓입니다. 제 생각에 일본 6개 JR 그룹에서 발행하는 모든 종류의 패스권 중 가장 가성비가 흘러 넘치는 패스가 아닌가 해요.
저는 운 좋게 엔화 가장 쌀 때 클룩(KLOOK)을 통해 구입해서 대충 98,000원 정도 값으로 구입했답니다. 10만원도 안 되는 값으로 5일 동안 산요 신칸센 최고 등급 열차(미즈호, 노조미)까지도 제한 없이 탑승할 수 있다...! 이보다 더 훌륭한 패스는 없을 것 같네요. 저 같은 철덕이 아니더라도 꽤 괜찮은 패스입니다. 오사카에 숙소를 두고 구라시키 미관지구에 다녀오거나, 교토에 숙소를 두고 이네노후나야에 다녀오는 정도만 해도 패스권 가격 이상의 운임을 뽑아 먹을 수 있습니다!
일본 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
오후의 홍차★
패스 교환을 마쳤으니 본격적으로 열차 이용을 시작합니다.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철도편으로 오사카에 들어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JR서일본을 이용하는 방법과 난카이 전철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전자는 특급 하루카, 후자는 특급 라피트로 여행자를 실어 나르고 있는데, 저는 신칸센으로 갈아탈 수 있는 신오사카역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특급 하루카를 선택했습니다. 가지고 있는 패스권이 JR 구간에서만 유효한 탓도 물론 있었고요.
특급 하루카는 한와선을 씽씽 달려 금세 텐노지역에 들어왔습니다. 이제 오사카 온 기분이 나네요! 여기서부터는 오사카 순환선, 우메다 화물선을 거쳐 신오사카역으로 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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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래 제 계획으로는 이곳 텐노지역에서 몇몇 열차 사진을 담고 다시 이동하려고 했지만, 계획을 살짝 틀어 텐노지역을 스킵하고 좀 서둘러 신오사카역까지 갔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두둥...!
일본에 도착한 오늘(1일차)이 우연히도 닥터옐로우 운행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오사카역 도착 예정 시각이 닥터옐로우 통과 시각과 거의 같아서 아슬아슬했지만, 신칸센 승강장으로 올라오자마자 정말 완벽한 타이밍에 닥터옐로우를 만났습니다. 도착 후 10분도 채 안 걸렸던 것 같아요!
"시작부터 대어를 낚다니~"
아, 여기서 닥터옐로우가 무엇인지, 그리고 닥터옐로우를 만나는 확률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기(하이퍼링크)를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만나면 ★금전운★이 들어온다는 속설도 있다는 닥터옐로우를 또 만났습니다.
제발x100 로또라도 되게... 크흠...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인데 제발요...
그저 하얀 도색일 뿐인 N700계 시리즈로 통일되고 있는 도카이도 신칸센에서 미친 존재감을 뿜어내는 노란 뚱땡이
일본인들은 철덕이 아니더라도 이 귀한 차량의 가치를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수히 많은 셔터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제 자신과 한 컷,
2025년 중에 퇴역한다고 하길래
열심히 찍었습니다!
III. 돌아온 여름의 한복판
멀리 후쿠오카의 하카타에서부터 달려온 닥터옐로우는 신오사카역 도착 후 잠시 차량기지에 들어갔다가, 이후 다시 나와서 도쿄 방향으로의 운행을 시작합니다. 닥터옐로우가 다시 신오사카역에 들어올 때까지 잠시 역에서 주변 풍경을 담기로 합니다.
한국도 전례 없는 에어컨 풀가동 추석이었다지만, 오사카는 정말로 불지옥이었습니다. 여름으로 다시 돌아온 기분이었어요... 36도라니 ㅠㅠ
그래도 하늘만큼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신오사카역 북쪽 출구랑 이어져 있는 remm 호텔, 며칠 뒤에는 저기에서 숙박할 겁니다.
오사카 국제공항(이타미 공항)에 접근하는 루트가 마침 신오사카역 바로 위에 있는 모양입니다. 하늘을 보면 여객기의 유려한 자태를 촬영하는 것도 가능하더라고요.
신오사카역에서 멋들어진 신칸센 촬영을 하는 건 물론 좋았지만, 이 덥고 에어컨도 없는 승강장에서 1시간 반 정도 촬영하니까
죽겠더라고요... 정말로 ㅋㅋ...
진짜 혼절하기 직전이다 싶었던 그 때
노란 뚱땡이가 그제서야 도쿄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역시나 여기도 카메라로 기록을 남기는 사람이 있군요 흐흐... 일본 철덕질은 이런 식으로 어딜 가든 나 혼자 하지 않는다는 점이 참 매력적입니다.
닥터옐로우가 출발하는 모습을 끝으로 바로 산요 신칸센 열차에 올랐습니다. 멀리 오카야마까지 이동해야 하기도 했고, 당장 이 더위를 피하고 싶기도 해서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움직였습니다!
IV. 맑음 도시 오카야마
신오사카역에서 오카야마역까지의 이동은 신칸센 최고 등급 노조미 열차의 자유석으로 하려 했지만...
그것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자유석 객실은 이미 좌석이 꽉 찬 것도 모자라 객실 사이 복도까지도 승객들이 차지하고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가장 빠른 열차로 사람들이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무거운 카메라와 망원렌즈를 지고, 냉방도 잘 안 되는 신칸센 복도에서 오카야마까지 이동하느니 차라리 자리가 널널할 수도 있는 후속 열차를 타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ㅠㅠ 결국 한 정거장만 이동해 신코베역에서 내렸습니다.
망원렌즈로 보니까 멀찍이 산요 본선을 달리는 전동차가 보입니다. 다행히 제가 내린 열차를 뒤따라 들어온 열차는 자유석 객실에 자리가 널널했습니다. 아마도 도쿄에서부터 온 노조미가 아니라 신오사카에서 운행을 시작한 산요 신칸센 미즈호라서 그랬던 듯 ㅠㅠ
창밖엔 만화에서나 볼 법한 전형적인 적란운이 뭉게뭉게 피어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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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무사히 오카야마 도착! 이번 여행의 전반부 베이스캠프는 오카야마가 될 예정입니다. 오카야마역에서 내리니 반대편 홈에는 미끈하고 퍼런 전기뱀장어 500계가 정차해 있습니다. 아~ 이제야 좀 JR서일본의 산요 신칸센에 온 것 같네요. N700계 흰둥이로 도배된 도카이도 신칸센과 신오사카역 인근에서는 이런 다양한 차종 보는 재미가 없습니다 ㅠㅠ 역시 오카야마까지는 와야 500계나 700계 같은 다른 차종을 쉽게 봅니다.
안 그래도 코가 참 긴 차량인데 망원 화각으로 볼 때와 광각 화각으로 볼 때의 체감 길이 차이는 더 큽니다 ㅋㅋㅋ 재밌습니다.
500계도 생긴 건 굉장히 미래지향적이게 생겼지만 머지 않아 퇴역할 노후 차량이므로 보일 때마다 찍었습니다 ㅠㅠ... 이번 여행의 한 가지 목표가 바로 이 500계 촬영을 충분히 해두는 것이었습니다.
방문할 때마다 항상 파란 하늘로 맞아주는 맑음 도시 오카야마! 다만 역 앞 광장에 있었던 분수대가 공사로 인해 사라졌네요. 아쉽...
오카야마역 근처에 위치한 호텔에 체크인하고, 짐만 던져둔 뒤 다시 나왔습니다.
최첨단 고속열차 타고 오카야마까지 왔으니, 이번엔 덜덜거리는 똥차 디젤동차 타고 한적한 철길을 보러 갈 거예요. 모모타로선(키비선) 열차를 타고 제가 생각하는 일본스러운(?) 풍경을 담으러 갈 거랍니다.
전철화도 되지 않은 단선 철길을 덜컹덜컹 달려 도착한 이곳은 키비츠역입니다.
역 주변은 대충 이런 분위기입니다. 역 둘레로 작은 마을이 있고, 딱 통근/통학 수요만 챙기고자 최소한의 시설만 갖춘 듯한 역, 단언컨대 이날 이 역에서 내린 한국인은 저 혼자였으리라 봅니다.
"도대체 그런 역은 왜 찾아가는 건가요?"
▲ 2024년 7월
치바현 이스미선
제가 생각하기에 일본스러운 느낌을 물씬 내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바로 토리이라 하는 이 신사의 입구 역할 문을 같이 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차한 키비츠역 근처에는 석조 토리이와 그 뒤로 보이는 철길 건널목이 있더라고요! 구글지도의 스트리트뷰를 통해 찾은 장면이었는데, 이런 풍경이라면 시간을 들여 직접 찾아가 볼만 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렇게 남긴 한 컷, 아쉽게도 해가 저물어 광량이 충분하지 않았던 관계로 이 사진 한 장만 후다닥 담고 복귀해야 했습니다. 건널목 앞에 차량이 두 대 서 있는 것도 아쉬웠지만, 지금 생각을 다시 해보면 오히려 그 덕에 붉은 후미등이 오묘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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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호텔로 복귀하기 전에 키비츠역 사진을 남겼습니다. 딱 있을 것만 있는 작은 역의 머리 위로 한가위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같은 시각 한국에서는 실로 많은 분들이 저 달을 보고 소원을 빌지 않았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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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 >
촬영 모두 끝내고 오카야마역 근처로 복귀하자마자 초밥 폭풍흡입 했습니다 크킄...
< 오늘의 포인트 >
*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 키비츠역 인근 건널목
** 오카야마역 근처 초밥집, 스시 카이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