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의 농부가 어느날 생면부지의 외국인에게 납치당했다. 그는 그와 마찬가지로 납치된 다른 사람들과 쇠사슬에 묶여 배에 태워졌다. 그는 자신을 실은 배가 어디로 가는지, 배가 도착하면 자신의 운명이 어찌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항해중 그는 고된 노력 끝에 쇠사슬을 풀어내고, 함께 갇혀있던 사람들도 쇠사슬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들은 선장과 선원들을 일부는 죽이고 일부는 구금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돌렸다. 배는 얼마 후 낯선 나라에 도착했다. 그 배에 구금되어 있던 납치범들은, 그 나라의 정부에 호소했다. 저들은 원래 우리의 소유이니, 잡아서 우리에게 돌려달라고. 그리고 그 나라의 대통령은 그렇게 하려고 했다.
싱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젊은 농부는 다시 감옥에 갇혔다. 이것은 1839년의, “아미스타드 선상반란”이라고 일컬어지는 사건이다.
1839년, 스페인의 아미스타드 호는 53명의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팔기 위해 항해중이었다. 쇠사슬에 묶인 아프리카인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끌려가는지, 왜 끌려가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부실한 식사와 좁은 선실, 열악한 처우로 인해 환자들이 하나씩 생겼고, 환자가 된 아프리카인은 “처분”되었다. 한달 정도의 항해중에 54명 중 9명이 죽었다. 노예들은 곧 봉기를 일으켰고, 그들의 “소유주”였던 호세 루이즈와 페드로 몬테즈로 하여금 배를 아프리카로 돌리라고 명령했다. 그들의 요구는 명확히 “아프리카로 돌아가겠다”는 것 뿐이었다. 8월 26일, 아미스타드 호는 미국 해군의 전함 워싱턴 호에 나포되었다. 싱케를 비롯한 아프리카인들은 뉴욕 주에서 체포되었고, 코네티컷 주로 끌려가 해적행위의 죄목으로 투옥되었다.
(중략)
루이즈와 몬테즈는 아프리카인 노예들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고, 아프리카인들은 자신의 기본적 권리를 주장했다. 이 권리들은 하나를 인정하면 하나를 박탈해야 하는 그런 성질의 것이었다. 그리고 정부는 루이즈와 몬테즈의 편을 들어주었다. 포사이스 국무장관은 “선량한” 스페인 노예상인들의 고통에 큰 동정심을 표현했다.
“루이즈 씨와 몬테즈 씨는 그들의 재산과 자유를 빼앗긴 채 불법적인 폭력의 고통을 겪고 생명에 대한 끊임없는 위험에 직면한 채로 미국 연안에서 발견되었다”
정부의 그러한 동정심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권리 문제는 법정에서 다투게 되었다. 미국 대통령 마틴 밴 뷰런은 여전히 “루이즈 씨와 몬테즈 씨의 권리”에 강한 연대의식을 보였던 “남부”의 정서와, 두 사람의 재물을 스페인에 돌려달라는 스페인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해군을 항구에 대기시켜놓고, 마음에 드는 판결이 나오면 “화물”들을 곧바로 붙잡아서 이송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통령을 기쁘게 만들 판결은 나오지 않았고, 정부는 곧바로 항소했다. 이 사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주장은, “스페인 공사의 요청에 따라 미국 정부는 재산을 반환하기 위해 이 사건에 관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쟁점은 물론, 그 재산에 아프리카인들이 포함되는가와, 스페인 공사의 그러한 요청을 미국 정부가 수용하는 것이 적법한가였다. 여기서 세 번째 권리가 등장하는데, 그 권리란 아프리카인들의 인권을 보호하지 않을 정부의 권리다. 이 세 가지 권리에 대한 판단은 결국 대법원에 맡겨졌다.
이 논쟁은 대법원까지 올라갔고, 대법원에서 아프리카인들의 변호인으로 등장한 것은 전 대통령인 존 퀸시 애덤스였다. 이 필연적인 정치의 순간에서, 그는 선량한 노예상인들의 재산권도, 그 재산권을 보호할 대통령의 권리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양측의 – 그러니까 화물과 화물주인의 – 입장을 둘다 포용할 수 있거나, 양측이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편파적이고 부당한 감정”의 산물은 협의가 아니라 배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최후변론에서 하나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다른 두 개의 권리를 철저하게 부정했다. 심지어 그는 아프리카인들이 탈출하기 위해 선원들을 죽인 일에 대해서도 “그래도 사람을 죽이면 안되지” 따위의 말을 하지 않았다.
“(전략) 무슨 이유로 국무장관으로부터 국민 전체에 이르기까지 동정심은 오직 2명의 쿠바 출신 스페인 사람들에게만 주어지고 그들의 불법적인 폭력에 희생당한 사람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까? 무슨 이유로 스스로 자유를 회복하고 자신들을 탄압한 자들의 폭력의 결과까지 감수하도록 한 사람들에게는 자비가 주어지지 않고 그 폭력행위를 저지른 당사자만 동정을 받는다는 말입니까? (중략) 우리가 범죄자로부터 보호해야 할 억울한 희생자는 누구입니까? 루이즈와 몬테즈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중략) 이 사건에서 행정부는 지극히 편파적이고 부당한 감정의 지배를 받으며 행동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감정이 이 사건 관계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결과, 미국 국민에게 자유의 근본이 되는 법의 원칙이 무시되고 피고인들에게는 인권 유린에 해당되며 사법부 권한과 독립에도 해가 되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중략)
우리는 이 재판이 아프리카인이라는 화물의 소유권 분쟁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 정부가 이 아프리카인이라는 화물의 소유권 문제에 개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따지는 것이 재판의 쟁점이었다. 스페인 노예상인들이 자신의 “화물”을 그대로 들고 가게 둘 것인지, 아니면 “남부”로 표현되는 국민들의, “아프리카인은 인간이 아니라고 믿을 권리”를 침해해서라도 얼굴 검은 비국민을 “인간”이라고 선언할지. 이 문제에는 어느새 스페인과 미국이, 남부와 북부가, 현직대통령과 전직대통령이 얽혀 국민적 대립전선을 형성했다. 결코 서로 합의될 수도 유보될 수도 없는 이 전선에서, 재판장은 법봉을 집어던지고 도망가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판결을 분명하게, 편파적으로 내렸다.
“(전략)이 아프리카인들은 자유가 보장되는 사람들로서, 노예가 아니라 납치되어 쿠바로 끌려오고 아미스타드호에 감금된 희생자들이다. 이들을 해적이나 해상강도라고 부를 아무런 이유가 없다”
(중략)
인권 문제에서 중립은 불가능하다. 인권에 대한 논란은 대개 지속적인 폭력이라는 상황 하에서, 이것을 중단시킬 것인가 중단시키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즉각적인 결정문제이기 때문이다. “중단시킬 것을 결정하지 않는 것”과 “중단시키지 않을 것을 결정하는 것”은 표현만 다른 같은 행동이다. 합의 역시 불가능하다. 특정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서는 외계인과 이세계인, 반인반수를 제외한 모든 인격체가 당사자일 수밖에 없다. 차별하는 계층과 차별당하는 계층 말이다. 인권에 대한 사회적 태도 문제에 있어서는 제3자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문제는, 도대체 누구에게 누구와 합의하라고 해야 하는가다. 빼앗는 자가 빼앗기는 자와 합의해야 한다는 태도는, 빼앗는 자에게 전권을 주겠다는 뜻이거나 빼앗기는 자에게 “수용하라”고 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중략)
“이곳에서 노예를 소유할 권리가 존재하는지 따져볼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인권과 관련해 어떠한 이론과도 양립할 수 없고 특히 독립선언서에서 자명하다고 선언한 권리와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자유에는 불가침의 인권이 부여되었다는 독립선언서를 보는 순간 이 사건의 판결이 어떠해야 하는지 분명해질 것입니다. 저는 이 불행한 피고인들을 위해서 독립선언서 외에 어떠한 것도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중략)
아미스타드 재판은 끝없이 반복되었다. “모든 인간에게는 천부적인 권리가 있다”는 판결에 대해 세계는, 정확히 말해 다수는 끝없이 질문을 던졌다. “그럼 흑인은?” “그럼 여성은?” “그럼 장애인은?” “그럼 동성애자는?” 끝없는 질문들이 모두 기각된 끝에 다시, 이 인권이라는 짜증나는 괴물을 향해 화난 목소리가 던져진다.
“그럼 도대체 우린 누굴 괴롭히란 말이야?”
모든 인간에게는 차별받지 않을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 그리고 어떠한 인간에게도 이 권리를 침해할 권리는 없다. 인권은 그것을 침해할 권리 앞에서 강제적이며, 폭력적이다.
http://yleft.kr/wp/?p=1759
요즘 서울시인권헌장이 "전원합의"가 아니란 이유로 파기되어서 이슈가 되고 있죠! 그래서 관련된 읽을거리를 하나 가져와봤어요. 원문은 훨씬 길지만 재미있네요.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10-05 11:5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