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여름이 지나간 사이 / 서일본 철도 답사기 [4일차]

※ 본 시리즈의 일본어 고유명사 표기는 나무위키 표제어에 등록된 표기법을 따릅니다. 다만 몇몇 예외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 쓰루가 → 츠루가 / サンダーバード → 선더버드 / 다카쓰키 → 타카츠키

I. 간사이에 왔으면 신쾌속을 타봐라

어제(2일차) 밤 늦은 시각에 겨우 신오사카역 인근 숙소에 도착한 타카기 양... 많이 피곤했는지 오늘(3일차) 일어나니까...

이미 대낮임 ㅎ...

알람을 몇 개를 세팅했는데,

다 제때 울리긴 한 거 같은데,

결국은 늦잠을 자버렸네 하핳...

쩝... 늦잠을 자서 오사카 시내를 둘러보려고 했던 오전 일정은 전부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호텔 철도뷰를 만끽할 수는 있었네요. 창밖으로 철도뷰가 펼쳐져 있다는 말만 듣고 선택한 숙소였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사소한 문제는 이게 침실이 아니라 ~~똥칸뷰~~ 욕실 방향 창이라는 점 ㅎㅎ

아, 혹시 궁금한 분들을 위해 정보를 남기자면 신오사카역 북쪽 출구랑 바로 이어져 있는 remm 호텔이었습니다. 보통은 도톤보리, 난바, 우메다에 숙소를 잡지 않을까 싶은데, 신칸센을 이용할 생각이 있으시다면 신오사카역 근처 숙소도 꽤 괜찮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늦잠을 자서 원래 계획했던 일정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게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푹~ 자고 일어나서 무척이나 상쾌한 기분이었습니다. 오히려 더 의욕이 넘치는 하루!

부랴부랴 나갈 채비를 해서 나왔습니다. 호텔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신오사카역 신칸센 개찰구, 철덕 최적화 숙소 선택이지 않았나 흐흐흐...

다만 오늘은 신칸센 말고 재래선을 이용할 거랍니다. 아쉽게도 신오사카역 북쪽 출구에서 재래선 구역까지는 꽤 거리가 있습니다. 개찰구로 분리되어 있는 신칸센 대합실을 크게 우회해야 하죠.

그치만 저는 그게 귀찮아서 신칸센 대합실에 소지하고 있는 패스권을 넣고 그대로 관통해 재래선 대합실로 왔습니다. 사용하고 있는 간사이 와이드 패스는 역 입장권 용도로도 쓸 수 있어서 운임 부과 구역을 그냥 통과해 동선을 아끼는 응용도 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몇 걸음 아꼈네요.

오늘(3일차)도 저는 동해를 보러 갈 겁니다. 일단은 츠루가까지 가야 해요. 마침 건너편 승강장에 츠루가역까지 운행하는 특급 선더버드가 정차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츠루가역까지 특급 선더버드 말고 사진에 보이는 요놈을 탈 거예요. 이 친구는 JR서일본의 대-혜자 열차 중 하나인 신쾌속입니다. 별도의 특급권 구입 없이 운임만 내면 탈 수 있는 열차지만, 130km/h급 빠른 속도로 케이한신 지역 각지를 잇고 있는 열차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반 여객열차가 운행하는 경부1선으로 빠르게 달리는 1호선 서울역 착발 천안급행 같은 느낌이랄까요? 한국인 관광객에게는 오사카에서 히메지나 교토를 왕래할 때 신칸센 생각이 나지 않게 해주는 고마운 열차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런 짤도 있습니다 ㅋㅋㅋ JR서일본의 신쾌속은 케이한신 지역에서 경쟁하는 한큐 전철, 산요 전기철도, 한신 전기철도를 모두 압도하는 말도 안 되는 표정속도를 자랑합니다. 오사카역에서 교토역을 불과 29분에 잇고, 심지어 운행 시격도 촘촘해서 오사카-교토를 이동할 땐 보통열차나 쾌속을 탈 필요가 없을 지경입니다. 오사카-교토 보통열차는 46분, 쾌속은 43분 소요 하여튼 신쾌속은 비슷한 거리인 서울역-수원역을 ITX-새마을/ITX-마음이 30분 내외로 잇는 것과 비교할 만합니다.

아무튼 그래서

'간사이에 왔으면 신쾌속은 타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5분 일찍 출발하는 특급 선더버드를 거르고 굳이 신쾌속을 타러 왔답니다.

물론 아무리 신쾌속이 좋다고 해도

아늑한 특급열차까지 탈 수 있는

패스권을 소지하고서

신쾌속만 골라 타는 건 바보짓이니

따라하지 마세요 ㅎㅎ;;

신쾌속은 통근형 전동차가 맞나 싶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JR 교토선을 쾌속 질주합니다. 그리고 신쾌속의 또 한 가지 매력이라면 바로 이렇게 전방 운전실 너머가 시원스레 보여서 열차의 속도감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열차의 선두칸 전망창 바로 뒤에는 늘 승객 몇 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오사카역을 출발하고 고작 20여 분 지났는데, 기관사 정면 운전정보 디스플레이에 벌써 교토역이 뜹니다. 신쾌속은 신오사카역과 교토역 사이에서 오직 타카츠키역 한 정거장에만 정차합니다. 미친 쿨함의 정석!

신쾌속은 교토역을 지나 계속 북상합니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교토역에서 하차해 드디어 저도 남은 구간은 앉아서 갈 수 있게 되었네요.

교토를 지나 야마시나역부터는 우리 열차 코세이선을 달립니다. JR 교토선(오사카역~교토역 구간, 도카이도 본선의 일부)을 달릴 때는 빼곡한 도심을 간신히 비집고 달리는 느낌이었지만, 코세이선 구간에서는 한적한 교외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름 모를 역에 정차 중,

아마 오츠쿄역이었을 것 같습니다.

차창으로는 가을이 온 건가 싶을 정도로 청량한 하늘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이날 서울은 세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자, 이제 이쯤에서 우리 열차 진행 방향 우측을 보면 일본 최대의 호수라는 비와호(琵琶湖)를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나무위키, 코세이선 문서

지금 달리고 있는 철도 노선의 이름인 코세이선도 눈치를 채셨겠지만 호수(湖)의 서쪽(西)을 달리는 노선(線)이라는 뜻입니다. 교토에서 호쿠리쿠 방향으로 진행하는 열차는 보통 이 코세이선을 이용합니다. 저도 지금 동해와 인접한 츠루가역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코세이선을 달리고 있는 것이죠.

출처 : 나무위키, 비와코선 문서

참고로 반대편 비와호 동쪽에도 코세이선과 마주 보고 달리는 비와코선(도카이도 본선의 일부)이라는 노선이 있는데, 이쪽은 주로 나고야, 도쿄 방향으로 가는 열차가 이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반드시 지켜지는 규칙 같은 건 아니고, 코세이선이 자연재해로 운행 불가가 되거나 하면 비와코선으로 우회하기도 합니다. 두 노선이 비와호를 사이에 끼고 서로의 바이패스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마치 바다가 아닌가 싶은 비와호의 모습입니다. 서울특별시 면적보다도 더 넓다고 하네요. 영락없는 바다와 비교적 가까이에 떠 있는 섬 풍경 같지만 호수입니다. 눈으로 보면서도 제가 생각하는 호수 이미지와 맞지 않아 인지부조화가 왔습니다.

진짜 호수임

바닷가 마을 아님!

섬 아님 ㅋㅋ

II. 해가 지는 동해

비와호 옆으로 쭉 뻗은 코세이선을 달려온 우리 열차는 시가현 북쪽 산지에 있는 오미시오츠역에 도착했습니다. 코세이선이 호쿠리쿠 본선에 합류하는 역입니다. 옆 승강장으로는 호쿠리쿠 본선, 비와코선, JR 교토선 등을 거쳐 멀리 히메지역까지 가는 신쾌속이 운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 열차를 타면 마이바라역에서 나고야, 도쿄까지 가는 도카이도 신칸센으로 환승할 수 있어서 그런지 큼직한 캐리어를 든 승객들이 꽤 많이 저쪽 열차로 갈아탔답니다.

이제 츠루가역에 거의 다 왔습니다. 아직 츠루가역에 도착한 건 아니지만, 츠루가역에서 환승할 열차가 도착 후 고작 3분 뒤에 출발하기 때문에 미리 준비를 해야 합니다 ㅠㅠ 3분 환승... 가능하려나...!

츠루가역에 내리자마자 뛴... 건 아니고 뛸 듯이 걸었습니다. 그래서 타고 온 신쾌속 열차 사진을 남기질 못 했네요 ㅠㅠ 이제 사진에 보이는 오바마선 열차를 타야 합니다. 츠루가역에서 14시 18분에 출발하는 오바마선 열차, 사진 중앙 위쪽 시계가 대략 16분 정도 된 시각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다행히 세이프! 탑승에 성공했습니다. 지금까지 타고 온 신쾌속이 바람처럼 달리는 폭풍 간지의 모습이었다면, 지금부터 타고 달릴 오바마선 열차는 느긋하게 달리는 전형적인 완행열차의 모습이랍니다.

츠루가역에서 오바마선 열차로 갈아타고 20분 정도 달려왔습니다. 오, 동해가 살포시 엿보입니다. 이번에는 호수가 아닌 진짜 바다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동해와 가까이 붙어 달리는 오바마선이지만 차창 풍경은 거의 모든 구간에서 요런 산지와 내륙의 풍경이었습니다. 동해에 바짝 붙어 달리는 우리네 영동선 같은 노선이 아니더라고요.

역 이름이 어떻게 오바마 ㅋㅋㅋ

오바마선 열차로 1시간 20분 정도를 더 달려왔습니다. 마침내 하차한 이곳은 세이하마역입니다. 사실 말이 좋아 역이지 승강장 하나 덩그러니 놓인 임시승강장 같은 곳이었습니다. 꽤 빡센 커브 구간에 놓여 있어서 열차가 기울어져 있는 게 눈에 확연히 들어옵니다. 이곳 세이하마역은 나무위키에도 항목이 개설되어 있지 않은 역이었습니다! 웬만한 일본 역은 다 정보가 있는 나무위키에도 없는 시골 간이역에 오다니 ㄷㄷ

내리는 승객은 저 말고도 학생 두어 명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아마 이런 어린 학생들의 통학 수단이 되고 있어서 아직 살아남아 있는 역이지 않을까 싶었네요. 여담으로 이 오바마선 열차 진행 방향 기준 선두칸의 출입문만 취급하고 있어서 내릴 때 못 내릴 뻔했습니다. 그 사실을 모르고 뒤쪽 칸에 타고 있었는데 문이 안 열려서 식겁했네요, 휴우...

의외로 정차하는 열차 수는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시골 간이역의 열차 정차 횟수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완전 자주 있는 편입니다. 조금 뒤에 사진 촬영 포인트 도착 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으니 시간표를 필히 담아줍니다.

오늘도 역시 나 혼자

역에서 나와 비수처럼 꽂히는 뜨거운 태양빛 아래를 씩씩하게 걷기 시작합니다. 어쩜 이렇게 그늘 한 점이 없는지 ㅠㅠ 중간중간 나무나 교량에 의해 만들어진 그늘을 만날 때마다 몇 분씩 휴식을 취하면서 촬영 포인트로 이동했습니다.

근데 또 사진은 청량하네요.

뙤약볕 아래를 20여 분 걸어 마침내 오바마선 철길과 동해를 함께 담을 수 있는 포인트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간신히 포인트에 도착해 처음으로 지나가는 열차를 담았습니다. 대충 오후 4시 20분 정도 된 시각에 지나간 첫 열차입니다. 열차 너머로 보이는 저 바다는 바로 동해, 저 바다 건너에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과 돌아가야 할 집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바다 건너에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일본에 와서도 계속 동해를 보러 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일본의 서북해안(동해)을 보나, 동남해안(태평양)을 보나 어차피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사진상으로 구분이 되지 않겠지만, 그냥 그런 생각 뒤에 따라오는 감성이 좋아은 것 같아요. 비록 멀더라도 돌아갈 곳이 확실하게 저 바다 뒤에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게 또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싶은 그런 생각도 들고.

나무 아래에서 햇빛을 피하며 계속 그다음, 그다음 열차를 기다렸습니다. 한 시간에 한두 대 지나가는 구간인 데다가 날벌레도 많고 더위도 전혀 꺾이지 않아 괴로웠습니다. 그래도 세이하마역에서 확보한 열차 시간표를 보면서 기다린 덕분에 기약 없이 기다리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버틸 만했네요. 슬슬 노을에 물드는 하늘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두 번째 열차는 오후 5시쯤에 통과했습니다.

오후 5시 25분 정도 되어 지나가는 세 번째 열차,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해가 지는 동해를 배경으로 달려갑니다.

어차피 기다리기 시작한 김에 해가 완전히 넘어간 뒤의 열차까지 기다려봤습니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들판과 바다의 색이 오묘하게 변해갈 때쯤에 노란 조명이 새어 나오는 네 번째 열차가 지나갑니다. 이 열차는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지나가 주었습니다.

III. 여름밤의 낭만이란 이런 것일까

이제 오바마선 열차 사진을 원하는 만큼 담았으니 밥을 먹어야겠죠? 구글지도로 촬영지 주변 식당을 찾아봤습니다.

그러나 그런 건 없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없었습니다 ㅠㅠㅠ 촬영하러 온 세이하마역 근처에는 관광지나 번화가가 있는 게 아니라서 드문드문 있는 가정집 말고는 정말로 딱히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오사카까지 쫄쫄 굶고 돌아갈 수밖에 없는 걸까 탄식하면서 터덜터덜 걷고 있던 그때, 우리나라로 치면 국도변 작은 휴게소 같은 느낌의 식당이 아직 영업 중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터덜터덜 걷고 있던 시각은 오후 6시 20분쯤 되었는데, 발견한 식당은 구글지도에 오후 7시까지 영업한다고 나오더군요. 마감이 아슬아슬하게 남아 혹 더는 손님을 받지 않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봤습니다.

다행히 마감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젊게 봐도 최소한 60대는 되어 보이는 나이 든 부부가 맞아주었습니다. 왕복 2차로 해안도로 옆의 작은 식당, 손님은 오직 저 혼자였고 TV에서는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저녁 뉴스가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휴대폰 배터리는 꺼져 가고, 세상은 점점 더 어둑어둑해지는 와중에 배는 고프고, 절망적인 상황에 나타난 이 식당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ㅠㅠ

다만 여기서 이제 작은 문제 상황 발생, 메뉴판을 봐도 저는 일본어를 읽을 줄 모릅니다. 파파고를 켜서 번역하면 될 일이긴 한데, 그렇게 하자니 휴대폰 배터리를 아끼고 싶어서 좀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운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그나마 자주 본 것 같은, 그나마 눈에 좀 익은 것 같은 글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주문을 받아주시는 할아버지께 "코레 오네가이시마스!" 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사시미 데스까?"라고 확인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아~ 회 정식(刺身定食)이었구나!

다행히도 정말 잘 고른 거였습니다! 격하게 끄덕끄덕하면서 맞다고 대답하고, 뭔지도 모르는 상태로 메뉴를 정한 작은 모험(?)이 성공했음에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긴장이 쫙 풀리는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는 노을을 안주 삼아서 술...이 아니라 물을 마십니다. 할머니께서 따라주신 물은 아주 진~한 녹차였네요.

한편 입구 근처에 있던 냉장고에는 이런 식으로 가격표가 붙은 밑반찬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먹고 싶은 걸 골라 가져가고 그만큼의 추가금을 내면 되는 모양. 저는 윗줄에 있는 고등어절임(시메사바)을 골라 가져왔습니다. 아니 솔직히 고등어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등푸른 생선을 먹고 싶어서 가져왔습니다.

드디어 나온 사시미 정식

두툼하게 썬 숙성회에 따뜻한 밥과 된장국을 받았습니다. 대책 없이 굶으면서 돌아가는 건가 싶었던 순간에 받은 밥상 ㅠㅠ 단새우, 연어, 참치 적신(아카미), 관자, 그리고 방어/부시리/잿방어 셋 중 하나 같은 것까지 종류도 다양해서 먹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밥 한술, 회 한 점 집어 먹을 때마다 굶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워서 울컥울컥했고요.

식사를 마치고 식당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제 하늘엔 노을빛도 거의 남지 않았고 군청색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세이하마역까지 걸어서 되돌아가는 길, 사진으로는 하늘이 그나마 좀 밝게 나왔지만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ㅠㅠ 가로등조차 없는 일본의 시골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상황, 꽤 으스스했습니다. 한국에서는 혼자서 어둑어둑한 시골길을 걷는다고 해서 딱히 겁이 나진 않는데, 전봇대에 매달린 노란 가로등 불빛조차 없는 일본의 시골길은 일부러 핸드폰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 걸어야 좀 나을 정도로 적적했습니다.

코와이요...

그렇게 빨리 역으로 돌아가려고 거의 뛸 듯이 걷고 있던 그때, 하필 또 신발끈이 풀려서 잠시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신발끈을 다시 질끈 묶고서 허리를 펼쳐 몸을 일으킨 그 순간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왜 하늘을 올려다볼 생각을 안 했던 걸까요? 인적 드물고 어둑어둑한 시골길이 무서워서 그저 빨리 역으로 돌아갈 것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주로 통하는 것만 같은 밤하늘을 확인한 순간부터는 이 길이 무서운 게 아니라, 오히려 조금만 더 길게 이어져 있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중간중간 밤하늘을 올려보는 여유를 부리면서 무사히 세이하마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다시 숙소가 있는 신오사카역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습니다. 무려 네 시간이나 돌아가야 합니다. 참 멀리 오긴 했네요.

열차 들어오기 직전에

간이역에 비친 제 모습을 남깁니다.

과연 열차가 멈출까 싶은 작은 승강장으로 어김없이 때가 되니 열차가 나타났습니다. 사진 촬영 포인트에서 도로변 식당을 거쳐 세이하마역까지 오면서 있었던 일들은 앞으로 꽤 오래 길고 긴 여운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하루가 완전히 저물고 나서야 다시 츠루가역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이제 특급 선더버드를 타고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신오사카역에 도착해 있겠네요.

신오사카역으로 돌아가는 특급 선더버드를 타러 갑니다. 츠루가역에서 호쿠리쿠 본선, 오바마선, 하피라인 후쿠이선 방향 보통열차는 좌측의 역사에서 출발하지만, 신칸센(호쿠리쿠 신칸센)과 특급열차는 우측의 새로 지은 멋들어진 역사에서 출발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