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발해 연재를 짧게 3회로 마치고 고구려 연재로 들어갈까 합니다. 저의 계획은 '시간 순'입니다. 고구려 초기부터 멸망까지의 순서대로 중요한 사건들을 다루고자 합니다. 다만 광개토대왕릉비와 임나일본부설은 그 자체만으로 거대한 논쟁거리이기 때문에 따로 빼서 맨 앞에 편성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고생을 많이 했던 내용이고, 너무나 난해한 한문 해석이 포함되어 있어서 어디까지 소개해야하나 걱정되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관심 가져주실 분야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다루게 되었습니다. 미리 밝히자면, 임나일본부설은 대단히 큰 논쟁거리가 되는 주제입니다. 

저는 소통, 토론을 원할 뿐 누구와 싸우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임나일본부설은 모두들 들어보셨을겁니다. 학술적인 정의는 윗 사진(민족문화대백과)을 참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임나일본부설이 단지 <일본서기>에서 기인하였을 때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서기>는 날조와 왜곡이 심대하여 역사서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일본과 관계 없는 타국의 소식을 전할 때는 나름 사실을 전하기도 하지만 일본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조작이 듬뿍 첨가됩니다). 그런데 이 임나일본부설은 조선 후기에 광개토대왕릉비의 '신묘년 기사'가 전해지면서 그야말로 대격동을 겪기 시작합니다.

광개토대왕릉비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장수왕 대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당히 거대한 비석이며 높이는 6m가 넘습니다. 고구려 멸망 이후에는 잊혀졌다가 19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다시 세상에 알려집니다. 사실 조선 사람들도 '만주에 엄청 큰 비석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금나라에 관한 비석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이 비석의 내용은 크게 3부분으로 나뉘는데, 처음에는 추모왕의 건국설화부터 시작해서 선대왕들이 소개되며 광개토대왕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두 번째 부분에는 광개토대왕의 업적이 집중적으로 소개되며, 특히 거란, 백제(비석에는 백잔으로 나오는데 백제를 낮춰 부르는 말입니다), 가야, 신라, 왜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광개토대왕이 누구를 어떻게 격파했고, 군대를 얼마나 동원했고, 무엇을 노획했고 등등 대왕의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마지막은 왕릉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광개토대왕릉비가 중요한 이유는 고구려인들이 직접 쓴 글이기 때문입니다. 

고구려의 역사를 연구할 때는 중국의 사서들을 참고하거나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을 보아야 하는데, 이것들은 고구려인들이 직접 쓴 책이 아닙니다. 일부 고구려인들의 말이라고 하는 것들이 인용되어 있을 뿐 고구려인들이 직접 작성한 기록은 사실상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광개토대왕릉비는 명백히 고구려인들이 직접 작성한 것이므로 사료로서의 가치가 막중합니다. 여기서 임나일본부를 다시금 설명드릴 수 있겠습니다. 과거 일본 학자들은 '광개토대왕릉비의 특정 내용을 근거로 하여 임나일본부설이 사실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밑에서 소개드릴 '신묘년 기사'입니다.

제가 한글 파일로 써서 다시 캡쳐해왔습니다. 그대로 번역하면 “백잔신라구시속민유래조공 이왜이신묘년래도해파백잔□□□라이위신민 왕궁솔수군 토리(벌?)잔국”입니다. 여기서 네모 표시된 3글자는 판독 불가한 글자입니다. 다만 맨 뒤의 네모는 그 다음 글자가 '라'여서 그 앞에는 '신'자가 오는게 거의 사실로 보입니다. 즉, '신라'라는 단어이죠. 물음표가 붙어있는 것 역시 아리까리한 글자입니다. 이 중에서 제가 맨 처음에 끊어놓은 '백잔신라구시속민유래조공' 부분은 '백잔과 신라는 과거부터 속민이었기에 조공을 해왔다'는 내용이 명확합니다. 문제는 이 뒤에서 시작되는데요, 바로 '이왜이신묘년래도해파백잔□□□라이위신민'부분입니다. 이 내용이 임나일본부설 논쟁에 불을 붙였습니다. 이 문장에 대한 학계의 다양한 해석을 이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문장의 주어를 '왜'로 보는 해석

이 경우에는 임나일본부설이 엄청난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일본의 한반도 남부지배가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게 됩니다. 이 경우에는 다시 2가지 해석으로 잘게 쪼개지는데요, 하나는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서, 백잔(백제)을 파하고 신라를 격하여 백제‧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라고 해석하는 겁니다. 이 해석은 □□□중 앞의 □□는 제외하고 해석하며 뒤의 □은 신으로 파악합니다. 근대 시기의 중국에서 주로 이런 해석을 하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서, 백잔‧임나‧신라를 파하여 백제‧임나‧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는 해석으로, □□□중 앞의 □□는 임나, 뒤의 □은 신으로 파악한 해석입니다. 일본 학자들이 가장 지지를 많이 했던 가설입니다. 여기서 임나는 가야 지방을 뜻한다고 해석됩니다. 둘 중 무엇이든지 임나일본부설은 강력한 근거를 얻게 되는 셈입니다. '고구려인들이 직접 작성한 임나일본부설 확인 자료가 되기 때문'이죠.

2. 앞 부분 주어는 왜, 뒷 부분 주어는 고구려로 보는 해석

이것도 크게 두 가지 해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왜가 신묘년에 고구려에 오니,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 왜를 파하였다. 백잔이 왜와 연하여 신라를 침하고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는 해석으로, □□□중 앞의 □□는 왜와 백제의 연합에 해당하는 글자, 뒤의 □은 신으로 파악하는 해석입니다. 주로 예전 한국 학자들이 지지했던 견해입니다. 다른 하나는   “왜가 신묘년에 ‧‧‧(목적지의 언급 없이)‧‧‧왔다.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 백잔을 파하였다. 고구려가 ‧‧‧(중간 내용에 언급 없이)‧‧‧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 는 해석으로, □□□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소수의 일본 학자들이 지지하였던 견해입니다. 둘 중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이 해석은 '고구려가 백제를 무찔렀다는 해석'입니다. 임나일본부설이 상당히 설득력을 잃게 되죠.

3. 날조설

아예 신묘년 조 내용이 날조되었다는 가설입니다. '파' 가 아니라 '고'였다 등등의 주장을 하였는데, 사실 최근에는 힘을 상당히 잃은 학설입니다. 더 예전에 광개토대왕릉비의 탁본을 떴던 것들이 나오면서 고의적으로 대왕릉비의 내용을 날조하였다는 가설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4. 예정설

“도해파백잔□□□라이위신민”의 내용을 기정이 아닌 예정의 의미를 가진 글자로 파악한 학설입니다. 이 경우에는 "왜가 신묘년에 오니, 백제가 (왜와 연합하여) 신라를 신민으로 삼고자 했다."고 해석됩니다. 

5. 왜군의 백제 주둔설

“왜이신묘년래”는 “‧‧‧신묘년에 왔다”고 읽는 대신 “‧‧‧신묘년 이래”로 읽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백제가 끌어들인) 왜가 신묘년 이래로 한반도로 건너왔다. 고로 (왜와 제휴한) 백잔이 신라를 침하여 신민을 삼으려 하였다.”로 해석됩니다. 이 학설은 신묘년 이래 본격적인 전투병력이 아닌 왜의 소병력이 백제로 건너왔고, 백제가 신라를 침하려는 것을 본 고구려가 영락 6년에 백제를 토벌한 것으로 파악합니다. 영락 6년 전투에 왜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도해한 왜가 전투병력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까지 잘 읽으셨다면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떤 해석이 가장 그럴듯해 보이시나요? 제 의견을 말씀드리기 전에 이번에는 <삼국사기> 내용을 소개해드릴까합니다. 광개토대왕릉비에서 신묘년은 서기 391년인데요, 어떤 이유에서인지 <삼국사기>에서는 서기 392년입니다. 사실 이 둘은 광개토대왕이 몇 대 왕인지도 살짝 차이가 있는데 이건 나중에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아무튼 해당 연도 내용을 보겠습니다. 

<삼국사기>에 나와 있듯이, '광개토대왕은 바다를 건너서 백제의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즉, 바다를 건너 백제를 파한 주체는 고구려로 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것입니다. 교차검증이 되기 때문이죠. 때문에 최근에는 일본 극우 계열을 제외하면 임나일본부설은 크게 문제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비석의 해석 상 논쟁은 있을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교차검증이 가능한 부분을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기술이 발전하여 해독 불가한 글자들이 해독 가능해지면 국면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요.

이번 편에 임나일본부설을 다룬 이유는 '모두가 짜증내지만, 정작 그 이유는 알지 못하는'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임나일본부설을 들어보지 않았던 분들은 거의 없으실 것입니다. 다만 그게 왜 잘못되었냐고 묻는다면 쉽사리 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해당 내용을 훑어보시고, 이런 게 있구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편은 이전의 것들에 비해서 훨씬 깊고 어렵고 길고 난해해서 걱정이 큽니다.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이 계시다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