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멸망을 배울 때는 항상 의문, 미스테리 같은 단어들이 따라다닙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멸망에는 그런 단어가 붙지 않는데 왜 유독 발해에만 멸망의 미스테리라는 단어가 따라다닐까요? 그만큼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빨리 망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정말 이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빠르게 무너졌습니다.

거란은 925년 12월 31일에 부여부를 포위합니다. 지도의 서북쪽에 있죠. 고구려의 부여성과 위치가 흡사해서 그 주변 지역으로 보는 곳인데요, 고구려 때부터 국방의 핵심 지역 중 하나였습니다. 돌궐, 거란 등 유목민족을 상대할 때 특히 그랬죠. 그런데 이 중요한 국경 요새가 단 3일만에 함락당합니다. 926년 1월 3일에 거란의 수중에 떨어집니다. 이후 기록도 뜨악한데요, 1월 9일에 수도인 상경이 포위당합니다. 대충 거리가 400-500km 정도 나오는 것 같은데 이게 단 6일만에 포위까지 진행되는 것이죠.

부여부 함락 이후에 발해 왕 대인선은 '노상'에게 반격군을 주어 거란과 싸우게 하는데요, 별다른 기록도 없이 그저 격파당했다고만 나옵니다. 노상은 그냥 늙은 재상이라는 뜻입니다. 이 부분이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입니다. 거란의 진격 속도를 보았을 때, 전투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데 수도에서 긴급히 보낸 반격군이 갔었다? 노상이 싸우지 않고 항복했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으로 더 설득력이 있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요사에도 발해 사람들의 마음이 멀어진 틈을 타 공격했다고 하는데, 발해 내부에서 분열이 있었기에 그냥 항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발해 멸망 직전에도 대씨들이 백성을 이끌고 고려에 귀부한 사건도 발생합니다. 대씨면 왕족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분명 내부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수도 방비도 형편 없어서 1월 12일에 바로 항복 선언을 때립니다. 이후에 무기를 회수하러 오는 거란군을 죽이는 사건도 있어서 대인선이 2차 항복도 하긴 하지만 큰 의미는 없습니다. 며칠 차이 안 나거든요.

기존에는 백두산 화산 폭발설 이런게 유명했었지만, 최근에 과학적으로 백두산 화산 폭발 시기가 발해 멸망 이후라는게 밝혀져서 아예 폐기되었습니다. 이제는 내분 + 거란의 수도 직공 작전이 먹혀서 멸망했다고 보는 것이 다수 견해입니다.

사실 여기서 발해 멸망만 논할 것은 아니고, 이와 유사한 다른 사례들을 소개드릴까 합니다. 백제 멸망, 귀주대첩, 병자호란이 발해 멸망 과정과 매우매우 흡사한 역사적 사건입니자. 이 중 백제 멸망과 병자호란은 성공했고 거란의 고려 침공은 귀주대첩으로 완전히 실패했죠.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수도 직공'입니다. 당과 신라는 기습적으로 백제의 사비성과 웅진성으로 밀고 들어갔고 결국 항복을 받아냅니다(여기에 예식진이라는 인물이 중요한데 이건 따로 주제를 빼서 다음에 논해보겠습니다). 거란의 고려 침공 역시 수도 진공 후 왕 잡기가 목적이었습니다. 특히 거란은 북방의 성들과 서경성마저도 함락시키지 못했으면서 개경까지 그냥 달려온 게 매우 독특했습니다. 거란의 침공은 다행히도 강감찬의 귀주대첩을 끝으로 잘 마무리되었죠. 병자호란도 따로 주제로 다뤄볼만큼 특이한데요, 당시 청군 선발 기병대의 진격 속도는 2차대전 롬멜 장군의 전차 진격 속도와 흡사했습니다. 인조가 침공 소식을 제대로 보고 받은지 불과 하루만에 청군 선발대가 한양에 도착합니다. 이들이 강화로 가는 길을 끊어버려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가게 됩니다.

수도 직공 작전은 사실 상당히 위험한 작전입니다. 우선 거의 전군이 정예 기병으로 꾸려져야 가능하며, 실패 시 그들은 몰살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 경우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요의 고려 침공이 그랬죠. 게다가 수도에서 공성전을 제대로 하기만 한다면 성공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목민족들이 이 전략을 자주 사용했던 것은 성공했을 때의 보상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의 전쟁으로 발해를 멸망시키고 인조를 무릎 꿇리는게 가능해집니다. 때문에 유목민족들은 자신의 속도를 믿고 이런 작전을 시도하는 것이죠.

역사는 반복되는 만큼 이런 사례들을 보고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조선은 정묘호란을 통해 청군을 대비했지만 미처 이런 사례들을 살펴보진 않았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조선의 수뇌부 전체가 패닉에 빠진 이유지요. 발해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단지 발해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사건들과 함께 공통점을 소개드리고 싶었습니다. 역사는 함께 보아야 재밌거든요! 발해는 사실 기록이 너무 적어서 시리즈를 오래 끌고 갈 소재가 없지만, 다음엔 다른 고대사나 조선사로 찾아뵙겠습니다!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해요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12-22 00:3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