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서영은 15분만 쉬자고 생각하며 사무실에서 나왔다. 지금은 3시인데 오늘이 마감일인 민원이 3건 남았고 과장에게 목요일까지 보고해야할 자료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15분 쉬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곽서영은 사무실 바로 앞 화장실을 지나쳐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있다.

곽서영은 여러 가지 이유로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하나, 사무실에서 앉아 있는 시간이 많으니 잠깐이라도 걷기 위해서다. 자신의 허리를 지키기 위한 곽서영만의 방법이다. 작년부터 곽서영은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지난달은 토요일 오전 시간을 도수 치료를 받는 데 다 썼다. 의사는 걷는 것이 허리 건강에 좋다고 했다. 둘, 사무실 바로 앞 화장실에선 아는 직원을 마주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곽서영은 아는 직원을 마주치면 웃거나 공손하게 인사를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곽서영에게는 그것이 에너지가 쓰이는 일이고 곽서영은 자신의 에너지를 화장실을 다녀온 후에 또 사무실에서 써야했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는 곽서영은 친절하고 싶지 않았다. 셋, 화장실을 사용할 때 자신에게서 나는 소리를 자신의 얼굴을 아는 직원들이 안 들었으면 싶어서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이유로 곽서영이란 사람은 사무실 바로 앞 화장실이 아닌 다른 화장실로 향하고 있다.

바로 아래층인 5층 화장실도 곽서영은 지나친다. 화장실 바로 앞에 과거 곽서영에게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상사의 친한 동료가 근무하는 사무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 둘이 같이 다니는 것을 곽서영은 여러 번 봤는데 싫어하는 상사가 아니라 그 상사의 친한 동료일 뿐인데도 곽서영은 그 동료마저도 마주치기 싫었다. 그래서 바로 아래층 화장실을 곽서영은 가끔만 이용한다. 곽서영이 근무하는 층에서 멀지 않은 화장실 중 유일하게 클래식이 나오는 화장실인데 곽서영은 자신이 5층 화장실을 자주 사용하지 못해 아쉽다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4층 화장실에 곽서영은 도착했다. 곽서영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화장실이다. 3층 화장실까지는 곽서영은 가지 않는다. 3층 화장실은 클래식이 나오고 구청장실과 국장실이 모여 있는 층이어서 다른 층의 화장실보다 더 깨끗하고, 관리가 잘 된 보라색 꽃이 심어진 화분도 놓아져있다. 하지만 6층인 곽서영의 화장실에선 꽤 멀며, 국장이나 구청장을 마주칠 수 있어 곽서영은 4층 화장실을 가장 자주 이용한다. 4층에는 대강당이 있고 사무실 수는 적어서 행사가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적은 편이어서다.

4층 화장실에 들어서니 모든 칸이 비어있고 화장실 세면대를 쓰고 있는 사람도 없다. 아무도 없는 것이다. 오늘 중 처음으로 곽서영은 혼자만 있는 공간에 들어와있다. 구청 바깥에선 오늘도 ‘주민 못살겠다, 구청장은 해결하라, 해결하라, 해결하라!’ 소리가 들리지만, 혼자만 있다는 사실에 곽서영은 나름 만족하며 화장실 칸 안으로 들어간다. 15분 쉬기로 했으니 화장실을 빨리 쓰면 직원 휴게실에서 잘하면 5분 정도 쉴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곽서영의 옆자리 주임이 반가를 써서 곽서영이 자리를 비우면 민원인은 곽서영이 사무실로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어쩌면 민원인이 와있다고 다른 직원에게서 전화나 카톡이 올 수도 있다.

곽서영은 이제 물비누로 손을 ��고 핸드폰을 들어 사무실을 나설 때 시작시켰던 스톱워치를 본다. 13분이 지났다. 직원 휴게실에 가지 않고 바로 사무실에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팀장에게서 전화가 온다. 민원인이 꽤 기다렸다는 전화다. 곽서영은 친절하고 공손하게 대답한다.

네! 바로 앞입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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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9-08 11:3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