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하루 종일 전화를 받고 방문 민원인을 응대했어. 그리고 집에 와서는 배 속에 음식을 마구 집어 넣었어. 어제는 같은 일을 하는 옆자리 직원이 연가를 쓴 날이었거든. 옆 직원이 연가를 쓰는 날이면 ‘오늘도 민원인이 많이 올까? 가끔은 옆자리 직원이 없는 날에도 민원인이 아주 많이 오지 않으면 할 만한 날도 있었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그런데 어제는 그런 날이 아니었어.

너도 알다시피 나는 항상 내 방에서 혼자 밥을 먹는데 어제같이 하루 종일 민원 응대를 한 날은 유튜브도 안 켜놓고 멍하니 밥만 먹어. 내가 밥을 먹으면서 보는 건 젓가락에 들려있는 밥알 정도야. 그렇게 음식이 공허한 몸을 좀 채우면 그때 유튜브 영상을 켜 놔. 소리를 꺼두고서. 하루 종일 회사에서 내 담당 민원인들이 내는 소리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 담당 민원인들 소리에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 벨소리까지, 그 삼중주, 아니, 직원들이 전화하는 소리, 그리고 구청 안내방송까지 그 사중주, 오중주의 소리를 하루 종일 들으면 나는 정말 밥을 먹을 때는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아.

구청 안내방송 소리는 또 왜 그렇게 크고, 잦고, 긴지. 어제는 퇴근 시간이 넘어서도 민원인이랑 전화가 안 끝났는데 퇴근 시간에 나오는 음악 두 곡이 어찌나 길고 크게 느껴졌는지 몰라. 나름 퇴근하라고 틀어주는 노래였지만 나는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안 그래도 무슨 말 하는지 잘 모르겠는 민원인이 말하는 내용을 더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 너한테 푸념만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너는 내가 이 세상에서 통하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너에게만은 푸념하고 싶었어. 내가 너에게마저 푸념할 수 없다면… 나는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 거야.

얼마 전에는 프랑스인 유튜버가 자신의 나라의 휴가일수에 대해서 말하는 영상을 봤어. 그날도 하루 종일 민원 응대를 한 날이었어. (퇴근 후에는 민원 응대를 하지 않으니 내가 하루 종일 민원 응대를 한 건 아니라고 너는 말하진 않을 거야) 멍하니 음식을 몸속에 집어넣은 후 켠 노트북 화면 속에서 프랑스인은 말했어. 7, 8월에 프랑스 파리에가면 파리지앙이 없다고, 파리지앙은 다들 휴가를 떠났고, 7, 8월에 파리에 있는 사람들은 관광객들뿐이라고. 바캉스라는 단어도 프랑스어고 프랑스는 1980년대부터 이미 기본 법정 휴가가 5주라고. 그런데 한국인들은 휴가가 있어도 눈치 보고 안 쓰더라고, 그러면 왜 휴가가 있냐고. 14일 있는 휴가 중 11월인 지금 8일, 가정의달 특별휴가까지 합치면 9일을 사용한 나는 그렇게 말하는 프랑스인을 보고 있었어.

한국은 아직 멀었구나 생각하면서 프랑스 사람들을 부러워했어. 사실 부러워했다는 단어만으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해. 7월에 너한테 편지 보낼 때 귀 뒤쪽이 간지러워서 많이 긁고 있다고 했었잖아. 그런데 약을 먹고 발라도 11월인 지금까지도 계속 간지러워. 이제 귀 밑 임파선도 부어올랐어. 그래서 눈으로 보기에도 귀 밑 멍울이 튀어나와 있어. 나는 프랑스인의 유튜브 영상을 귀를 벅벅 긁으면서, 그리고 튀어나온 멍울을 만지작거리면서 봤어. 프랑스 사람들처럼 5주 휴가가 나에게도 올해 있었다면, 아니, 5주까지는 아니어도 올해 8월에 1주일만이라도 연속으로 휴가를 갈 수 있었다면, 왼쪽 귀 밑 임파선이 이렇게 안 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내 옆자리 주임이 자궁근종 수술을 안 하지 않았을까, 나랑 같은 연도에 입사했던 신규 공무원 몇 명이 자살하지 않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한국의 휴가일수가 프랑스에 비해 적어서 몸이 아픈 직장인들이 있고 자살하는 직장인도 있다는 것은 너무 큰 비약일까? 물론 프랑스에도 몸이 아프고 자살하는 직장인은 있을 거야. 그래, 인간은 아무리 지상낙원이어도 아플 거고 자살할 거야. 그래도 지금 한국에서 휴가일수가 더 늘어난다면 아프거나 자살하는 직장인들이 더 줄어들지 않을까? 아니면 오히려 우리가 장기휴가를 떠날 수 있다면 명절 스트레스처럼 또 다른 스트레스 받는 기간이 생겨날까? 그래도 아프거나 자살한 직장인의 총계를 보면 줄어있지 않을까? 유급휴가 기간이 늘어나면 기업 이익이 줄어들어서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실업률이 높아져서 자살하는 실업자가 늘어날까? 아, 나는 모르겠어. 나는 휴가일수와 직장인들의 유병률 및 자살률, 그리고 경제성장률, 실업률, 실업자의 자살률 간의 상관관계, 이런 것까지는 모르겠어.

다만, 내가 올해 8월에 1주일만이라도 연속으로 휴가를 갈 수 있었다면, 1주일만이라도 전화를 받지 않고, 수화기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지 않고, 귀에 수화기를 붙이지 않고, 귀가 뜨겁지 않았다면, 지금보다는 귀가 덜 간지러웠을 거야. 그랬을 거야. 요즘은 자고 일어나면 베개피에도 귀 뒤에서 흘러나온 진물이 묻어있어. 그리고 나는 주말에 진물이 묻은 베개피를 빨고. 아, 나는 너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너에게 편지를 쓰는 지금도 귀가 간지러워. 나는 지금 고통스러워. 이제 출근해야할 시간이야. 너에게 내가 이 편지를 보낼지 모르겠어.”라고 A는 쓰고는 노트북을 덮는다. A의 책상 위에는 귀 뒤의 진물을 닦아 노란 진물이 묻어난 거즈와 약간의 눈물과 콧물을 닦아낸 휴지가 놓여있다. A는 그것을 휴지통에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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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9-08 01:2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