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한 정거장 더 간 역의 모습이 궁금해서
헤... 숨가쁘게 한 주를 살고 오느라 3일차 2편 업로드가 늦었네요. 지금 돌아왔습니다 ㅠㅠ
이스미선 주변 논두렁 어딘가의 신사와 단칸동차를 찍은 뒤로, 저는 하차했던 오타키역이 아니라 그 다음 역인 코야마츠역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 정거장 더 간 역은 또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기도 했고, 열차 시간이 꽤 많이 남아서 걸어갈 시간이 되기도 했거든요. 무엇보다 햇빛이 들지 않는 날씨라 걷고 싶기도 했습니다.
논두렁 가운데에 새빨간 토리이를 세울 생각을 한 건 누구였을지, 그 옆에 마침 만화처럼 은행나무를 둘 생각은 어떻게 한 건지 궁금한 사당이었습니다.
당연히 선로를 따라 걸은 건 아니고요, 구글지도를 보면서 코야마츠역까지 걸어갔습니다. 오직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바람결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만 들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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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걷기 시작하고 한 20분?
바로 후회했습니다 ㅋㅋ
햇빛이 비치지 않아서 그나마 덜 더웠던 것이긴 한데, 그래도 기온은 30도를 넘고, 비가 온 직후라서 그런지 엄청나게 습해서 땀이 마르지를 않았습니다. 중간중간 자판기도 있고 식당도 있는 오타키역 방향으로 걸을 걸!! 이런 후회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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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음 정거장이 엄청 멀지는 않아서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 철도의 신이 도운 것인지 코야마츠역 도착 직전에 보이는 건널목이 열차 접근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타이밍이 아주 좋았네요!
일본은 어디서나 신사를 흔하게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열차와 신사가 같이 나오게 프레임을 잡는 건 또 막상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건널목 너머로 석재 토리이가 자리하고 있어 열차와 함께 담을 수 있었습니다.
하차했던 오타키역은 번듯한 대합실도 있고 열차가 비껴갈 수 있게끔 선로도 몇 가닥 있었는데 한 정거장 더 온 코야마츠역은 이것이 시설의 전부였습니다. 버스 정류장 같은 아주 작은 쉼터와 역명판, 그리고 협소한 승강장과 선로 한 가닥이 전부였어요. 당연히 무인역이고요. 그런데도 누군가의 손길이 닿고 있는 것인지 선로 옆으로는 수국이 아직 남아 있었고 승강장 화단에도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역시나 거울 셀카를 한 장,
작은 역과 저를 같이 담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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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 도착한 뒤로는 핸드폰 배터리도 금세 방전되어 딱히 할 게 없었습니다. 시간도 때울 겸 역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중 벽면에서 뭔가가 튀어 다니길래 처음엔 벌레인 줄 알았는데
개구리였습니다 ㄷㄷ
벽면과 창 이곳저곳에 손톱 사이즈의 작은 개구리가 매달려 있어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비록 핸드폰은 배터리가 나갔지만 카메라는 아직 배터리가 빵빵하다는 점에 안도감을 느끼며
그리고 역에 마침
칠판과 분필이 있더군요.
방명록?
이건 안 참지!
곧장 흔적을 남겼습니다.
어쩌다 보니까 일본에 올 때마다 타카기 양을 한 번씩은 꼭 그리게 됩니다. 그릴 때마다 조금씩 실력이 발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분필 그림이라 펜을 쓸 때보다 훨씬 어려웠지만 지금껏 그렸던 타카기 양 중엔 제일 잘 그린 것 같더라고요.
때가 되니 열차가 들어옵니다. 과연 시간표대로 열차가 올까 싶은 작은 역이지만 어김없이 열차는 옵니다. 간이역에서 열차에 오르는 경험은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그래서 기분 좋은 경험입니다.
볼 때마다 정말 버스 같습니다 ㅋㅋ
열차에 오르니 마치 전세 낸 것 같은 기분?! 객실에 승객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일본도 기름 안 나오는 건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을 텐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직 한 사람을 태우기 위해 기름값도 비싼 시대에 열차는 달리고, 멈추고, 다시 출발합니다.
코야마츠역은 녹음 너머로 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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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타지 않은 전세열차(?)를
잠시 즐겨봅니다.
금세 처음 하차했던 오타키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오타키역에서는 기관사님이 제게 뭐라뭐라 설명하시더니 열차 맨 뒤로 가서 뭔가를 감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어를 몰라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철도를 이용해 봤던 그간의 짬으로 봐서 꽤 오래 정차했다가 출발한다는 의미 같았습니다.
이 장면을 보고 뭔가
감이 오는 게 있으신가요?
(뭔지 알겠다면 철덕의 자질 충분)
퇴근 시간대가 오기 전에 수요에 대응하려는 것인지 오타키역 측선에 대기하고 있던 차량을 우리 열차 뒤에 이어 붙이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관사님이 후방 감시를 하고 있던 거였고요.
연결 직전!
한국에서도 동대구역, 익산역 등에서 두 열차를 하나로 이어 붙이거나 분리하는 작업을 볼 수 있는데, 일본의 시골 로컬선에서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쿠당탕~ 가벼운 충격과 함께 두 열차는 하나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수송원분들이 각종 호스(아마도 제동관, 주공기관, 점퍼선이지 않을까 함)를 연결하고, 통로를 개통하고, 통로막을 펼쳤습니다. 단칸동차였는데 이제는 2량 편성이 됐습니다. 이제 보니 뒤쪽 차량은 롱시트가 아니라 크로스시트네요. 탈 땐 몰랐고 지금 글 올리면서 깨닫습니다.
아, 그래서 다른 승객들이
다 뒤쪽에 탔던 거구나!
차량 증결을 마쳤으니 이제 열차는 출발을 준비합니다. 문이 닫히기 전에 오타키역 거울을 이용해 셀카를 남겼습니다. 저를 가리키면서 주의라고 적혀 있네요. 여러분은 옆나라까지 가서 기차만 줄창 타는 이런 사람을 주의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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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 열차로 환승할 수 있는 오하라역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음 같아선 이 노란 디젤동차를 더 찍고 싶었는데, 갈아탈 열차가 고작 4분 뒤에 있고, 그 사이 발매기에서 좌석을 지정하기도 해야 해서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이스미선 답사를 끝냈습니다. 시간이 여간 촉박한 게 아니었네요. 그와중에 핸드폰은 배터리가 다 되어 벽돌 상태고 ㅋㅋㅋ 이제 일본 철도 이용이 꽤 익숙해져서 핸드폰이 죽었다고 불안해지는 건 아니었지만, 환승할 열차를 놓치면 그 다음 열차 올 때까지 시간 때우기가 힘들어질 것이니 부랴부랴 JR 오하라역으로 갔습니다.
다행히 도쿄로 돌아가는 특급 와카시오를 놓치지 않고 탔습니다. 핸드폰 배터리가 다 닳았어도 딱히 불안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열차 벽면에 콘센트가 있다는 걸 오면서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스미선 꼬마열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빠른 속도로 열차는 이내 도쿄로 들어갑니다.
II. 어디까지 가도 될까요
다시 도쿄역 케이요선 지하 승강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날의 계획은 이스미선 답사 후 지상 도쿄역에서 사진을 좀 남기고서 일찍 베이스캠프인 후지사와로 복귀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돌아온 지상 도쿄역,
퇴근 시간대가 시작됐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에는 치바현의 한적한 마을을 걷고 있었는데, 돌아오니 저는 다시 거대한 도시 속 먼지 하나가 되었네요.
아침에 후지사와역을 출발해 도쿄역으로 올 때 일본 수도권의 지옥철을 경험했기에 지금 저걸 타고 되돌아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대뜸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좀 때우다가
사람들이 빠지면 돌아가려 했는데
두둥!
특급 토키와/히타치로 운행하는 E657계 전동차를 보니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퇴근 시간대를 열차 안에서 보내버리면 그만인 거 아닌가?? 어차피 패스권이 있으니 일찍 돌아가지 말고 겸사겸사 가보고 싶었던 동네도 가보고요.
내가 누구?
특급열차까지도 무제한 탈 수 있는
「도쿄 와이드 패스」
오우너
이 복잡한 도시에서 시간을 때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차피 패스권이 허락하고 있으니 도쿄 이북으로 가보기로 합니다!
특급 토키와를 타고 히타치라는 동네까지 가보기로 계획을 바꿨습니다. 어차피 오늘 안에 돌아올 수만 있으면 어디든 가도 되니까!
▲ 구글지도 히타치역 사진 리뷰에서 펌
멀리 이바라키현에 있는 히타치역에 가보려는 이유는 히타치역 대합실에서는 뻥 뚫린 채광창을 통해 바로 앞의 태평양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도착하면 이미 해가 져 밤이겠지만, 우리나라 경포대처럼 해변에 조명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충분히 예쁜 바다의 모습을 역에서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도쿄역에서 탄 특급 토키와는 해가 지평선 너머로 넘어간 시각에도 계속 멈추지 않고 달리고
히타치역에 가까워지니 객실에 남은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해가 긴 계절이라지만 그래도 상당히 늦은 시각이라서 창밖에는 오직 어둠만.
마침내 히타치역 하차!
과연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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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바다 안 보여~
아쉽게도 히타치역에서 보이는 바다는 우리나라 정동진역에서 볼 수 있는 그런 해변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역에서 바로 바다가 보인다고? 그렇다면 당연히 역에서 금세 갈 수 있는 해변이 있고, 해변을 밝히는 조명도 있을 거라 기대했던 ㅠㅠ...
아쉬웠슴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김에 히타치역 외부 야경 사진을 조금 담았습니다. 삼각대 없이 손으로 들고 찍느라 감도를 팍 올려서 노이즈는 자글자글하지만, 멋들어진 도로 교량이 하나 있어줘서 알록달록한 사진은 된 것 같습니다.
III. 과유불급, 욕심을 부리지 말았어야지 ㅋㅋㅋㅋㅋ
근데 진짜 되돌아가려고 히타치역으로 다시 들어온 순간부터 진짜 공포가 시작됨 ㅇㅇ... 멀리 이바라키현까지 왔지만 숙소는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市)에 있는 친구 집입니다. 돌아가려면 특급을 타고 도쿄로 막차 시간대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해서 열차를 갈아타야 하죠.
그런데 도쿄 가는 열차가
지연 30분을 기록하고 있네요.
어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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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후지사와 가는 막차...
무사히 탈 수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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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저거 보고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아니 폭우가 내린 것도 아니고, 지진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철도 강국인 일본에서 지연 30분? 그것도 하필 내가 딱 타야 하는 열차가? 순간 잠이 확 깨면서 여차하면 밖에서 밤을 보내야 할 수도 있으니 먹을 것부터 미리 사두자는 생각으로 역 편의점에서 식량을 챙겼습니다. 와중에 취향이 보이는 식량 선택이었네요. 친구에게 여차하면 오늘 밤에 못 들어갈 수도 있다고 자초지종 설명도 해두고 ㅋㅋ...
차라리 먼저 출발하는 보통열차에 몸을 싣는 게 나으려나 검색도 엄청 해봤습니다... 하지만 이 동네 보통열차는 도쿄까지 다이렉트로 꽂아 주는 건 없다시피 하고, 중간 종착역에서 갈아타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도 길어서 결국은 30분 지연 먹은 도쿄행 특급열차를 타는 게 낫겠더라고요 ㅠㅠ
부탁이야... 조금만이라도 지연 회복을 해줘
똥줄이 타는 와중에도 찍을 건 또 다 찍어놨네요. 제가 타야 하는 특급 히타치가 제때 왔더라면 찍을 기회가 없었을 열차를 찍고 있습니다.
밤 9시에 탔어야 하는 차가 9시 30분을 조금 넘겨서 들어왔습니다. 지연되었던 이유가 전차선 장애라고 뜨더라고요. 역에서는 연신 열차 지연에 대한 안내와 사과 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래요... 그래도 중간에 운행을 끊지 않고 계속 가는 게 어디입니까?
그래도 지연 회복을 신경 쓰고 있는 것이었는지 체감상 히타치로 올 때 탔던 열차보다 더 빨리 달리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습니다. 역에 정차할 때 고속으로 들어와서 강한 제동으로 팍 멈추는 그런 느낌.
ㅋㅋㅋ 그래도 결국은 지연 폭을 줄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더 많이 지연된 건 아니라서 시나가와역에서 후지사와 가는 열차는 탈 수 있겠더라고요. 도쿄에 가까워지면서 천천히 안도했던 그때의 기분이 다시 생각나네요.
여담으로 지금 조회한 이건 특급 토키와/히타치 상행 막차인데, 지금 타고 있는 열차가 하도 지연되다 보니 막차가 우리 열차보다 한 정거장 정도 앞에 있음... 막차보다 더 늦게 운행하고 있는 열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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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ㅠ 그래도 열차가 추가로 더 지연되지는 않아서 아직 전철 다니는 시간대에 시나가와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무사히 후지사와역 복귀!
퇴근 시간대 지옥철 피하려다가,
출근 시간대에 복귀할 뻔했네요.
아침에 출근, 등교하는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던 후지사와역에 막차 시간 거의 다 돼서 돌아왔습니다. 무사히 복귀했다는 안도감에 얼마나 이 역이 아름다워 보이던지 ㅋㅋㅋ 친구는 다행히
오, 용케 돌아왔네?
갑자기 히타치 간다 할 때 알아봤지
...라면서 간신히 복귀한 저를 축하해줬습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12-22 10:4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