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첩첩산중으로 찾아가는 이유는?

둘째날이 밝았습니다. 2일차에는 특급 야쿠모로 운행하는 구형 전동차 381계와, 이 381계를 대체할 신형 273계 전동차를 담는 것이 목표입니다!

▲ 작년 11월에 촬영한 381계 / 국철 도색 야쿠모

2024년 4월 현재 특급 야쿠모로 운행하고 있는 381계 전동차는 일본 국철 시절에 도입되어 아직까지도 살아 남은 최후의 특급형 전동차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이 381계 전동차를 작년 철분 보충 때 오카야마역에서 처음 만났는데, 이때는 이 차량의 가치를 모르는 상태로 그저 다른 철덕들이 찍길래 덩달아 찍은 기억이 있습니다.

▲ 요나고역 상점에 있는 318계 야쿠모 기념 상품

JR서일본에서도 이 차량의 가치와 인기를 아는지 특급 야쿠모 운행 50주년인 2022년부터 381계 전동차의 도색을 과거의 국철 도색을 포함한 다양한 색깔로 재도색하여 운행하고 있습니다. 국철 도색 야쿠모, 슈퍼 야쿠모, 녹색 야쿠모(미도리 야쿠모), 느긋한 야쿠모(윳타리 야쿠모) 이렇게 4가지 종류가 있습죠. 그 중 슈퍼 야쿠모는 제가 방문하기 직전에 차량 노후화로 운용에서 이탈하여 더는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ㅠㅠ...

어제(1일차) 요나고역에 도착해 받은 이 JR패스의 강력함을 믿고 381계 전동차 사냥에 나섭니다! 특급 야쿠모는 작년과 달리 자유석 없는 전석 지정석으로 변경되어 야쿠모 제6호 열차의 지정석 티켓도 미리 발권했습니다. JR패스를 이용하면 추가금 없이 특급열차 지정석 발권이 가능합니다.

한편 여담으로, 이 JR패스 교환에 있어서도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ㅋㅋㅋ... 요나고역에 도착해서 JR패스 실물 티켓을 수령할 역무실을 찾고 있었는데, 제가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젊은 역무원 한 분이 다가와 말을 걸어주더라고요. 그래서 JR패스 바우처를 보여주며 실물 티켓을 받고 싶다고 했더니(물론 파파고 번역으로) 이 바우처만으로는 교환이 안 된다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QR코드가 인쇄된 바우처가 있어야만 교환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작년에 마츠야마에서는 이것만으로도 교환이 됐는데요?"

순간 당황해서 작년엔 이걸로도 교환이 됐었다고 하니, 역무원도 헷갈리기 시작했는지 잠시만 기다려 달라면서 나이가 지긋한 (아마도 역장으로 보이는) 다른 역무원께 가더군요. 다행히 나이 지긋한 역무원께서는 역무실에서 교환하면 되니까 줄 서면 된다고 하더랍니다. 그리고 제게 처음 말을 걸었던 젊은 역무원은 시간을 뺏어서 미안하다면서 거듭 머리를 숙이더라고요 ㅋㅋ... 5만엔이나 쓴 JR패스를 못 받게 될까봐 그 짧은 순간 동안 얼마나 쫄았는지 모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JR서일본에서 발행하는 다른 철도 패스는 QR코드가 인쇄된 바우처를 제공하고, 이것을 통해 실물 티켓으로 교환할 수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져온 건 JR서일본 철도 패스가 아니라 일본 전국 패스였기에 역무원도 잘 몰라서 벌어진 해프닝이었습니다. 휴... 중소도시 철도역에서 JR패스를 교환할 때는 역무원도 잘 몰라서 이용객이 설명을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 일이 제게도 벌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ㅋㅋ 그래도 이런 게 다 여행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야쿠모 사냥을 위해 요나고역으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특급 야쿠모 제6호 열차를 타고 니미(...)역까지 이동합니다. 역명의 상태가;; 이후 보통열차로 환승해서 산골짜기 어딘가에서 내리려 합니다.

탑승할 야쿠모를 기다리면서 요나고역 이곳저곳의 모습을 담아줍니다. 요나고역은 사카이선, 하쿠비선, 산인 본선이 만나는 꽤 큰 철도 거점이었습니다. 제가 탈 특급 야쿠모는 오카야마역과 이즈모시역을 잇는 특급열차입니다. 산인 본선, 하쿠비선, 산요 본선을 경유하는 열차죠.

저를 하쿠비선 니미역까지 데려갈 특급 야쿠모가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이 친구가 바로 곧 퇴역할 381계 전동차를 대체할 273계 전동차입니다.

객실 모습은 우리나라의 ITX 계열 열차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운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삥이라 그런가 상당히 쾌적합니다. 하지만 저 큼직한 헤드레스트는 정~~말 푹신하고 편안했습니다. ITX-새마을에도 머리 부분에 쿠션이 있긴 하지만, 보통 숨이 팍 죽어 있어서 푹신하다는 느낌을 얻기는 어렵거든요 ㅠㅠ 다만 앞좌석 밑에 발받침이 없어서 그건 하나 아쉬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발받침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여기서 한 가지 재밌는 점은 특급 야쿠모의 차내 안내방송 멜로디가 히게단의 Pretender였다는 것입니다. 니미역까지 가는 동안 익숙한 멜로디가 자꾸 나와서 즐거웠습니다.

요나고에서부터 하쿠비선을 따라 1시간 안팎을 달려 니미역에 도착했습니다. 이곳 니미시는 오카야마현 북서부 키비 고원에 자리한 산간 도시입니다. 제가 오늘 가려고 하는 곳은 특급열차는 정차하지 않는 작은 역이기에 이곳에서 보통열차로 갈아탑니다.

맞은편 홈에는 니미역을 출발해 오카야마까지 가는 전동열차가 들어와 있습니다. JR서일본 특유의 노란색 전동차입니다. 60년대에 최초로 데뷔한 낡디 낡은 구형 차종이지만, 아껴 쓰고 고쳐 쓰는 JR서일본의 구두쇠 정신으로 여전히 현역입니다.

일본어 장음까지 고려하여 니이미역이라 적을지, 그냥 나무위키 표제어에 등록된 것처럼 니미역이라 적을지 고민하다가 그냥 니미역으로 씁니다 ㅋ

니미역을 출발한 보통열차는 우리나라 영동선, 태백선 같은 곳에서나 볼 법한 풍경 속을 달립니다. 한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탈 수 있는 통근형 전동열차를 타고 이런 심산유곡을 달린다는 것이 무척이나 색다르게 느껴집니다.

왜인지 요아소비가 생각나는 이쿠라역

니미역에서 보통열차로 30분 남짓 하쿠비선을 더 달려 호코쿠역에 도착했습니다. 여기가 바로 제 목표 지점입니다.

니미역에서 이곳까지 저를 데려온 115계 전동차와 셀카를 남깁니다. 거울 좌하단으로 출발신호기가 정지(적신호)를 현시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곳 하쿠비선이 단선 철길이고, 마침 맞은편에서 달려 오고 있는 열차가 있어 진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 방향 열차와의 교행을 위해 타고 온 완행열차는 호코쿠역에 좀 더 정차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거울 속에 있는 열차의 정면 생김새에 주목해 주세요.

재밌게도 이 열차의 반대편 생김새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앞뒤 선두칸 생김새가 완전히 다릅니다. 먼저 보여드린 전두부가 오리지날 115계 전동차의 전두부이고, 아래쪽 사진 식빵처럼 납작한 전두부는 중간 객차를 운전 객차로 개조하면서 새로 덧댄 운전실이라 이렇게 큰 생김새 차이가 생겼습니다. 이런 마개조가 JR서일본의 특기라고 하네요.

▲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저항제어 전동차

물론 우리나라에도 중간 객차를 운전실이 있는 객차로 마개조한 사례가 있긴 합니다. 1호선의 악명 높은 빨간 똥차가 바로 그 사례입니다. JR서일본의 115계 전동차나, 1호선의 빨간 똥차나 장수만세 전동차라는 다른 공통점도 있군요.

맞은편으로 교행 열차가 통과하기 전에 호코쿠역과 115계 전동차를 좀 더 둘러봅니다. 산간 지역이라 봄이 늦게 오는지 군데군데 꽃이 피어 있습니다.

잠시 기다리니 맞은편 승강장으로 요나고, 이즈모시 방향 특급 야쿠모 381계 전동차가 통과합니다. 제가 니미역까지 타고 왔던 273계 전동차와 비교하면 확실히 클래식하게 생겼습니다! 빨간색 도색을 입고 있네요. 저 도색은 '느긋한 야쿠모(윳타리 야쿠모, ゆったりやくも)'라고 불립니다. 저 381계 전동차 사진을 담기 위해 이곳 첩첩산중까지 왔는데 보람이 있습니다.

맞은편으로 특급 야쿠모가 지나가니 115계 전동차도 오카야마 방향으로 계속 나아갑니다. 여기서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이곳 호코쿠역에서 막 내리니 웬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께서도 저처럼 망원렌즈가 물려진 DSLR을 들고 승강장에서 대기하고 계시더라고요.

"동족은 동족을 알아보는 법..."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지 우리는 눈빛만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역시나 그 할아버지께서도 특급 야쿠모 381계 전동차를 담고 역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II. 야쿠모 사냥

승강장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을 통해 승강장 밖으로 나왔습니다. 올해 바빠서 한국에서도 벚꽃 구경을 제대로 못 했는데, 일본의 무인 간이역에서 꽃을 다 봅니다.

호코쿠역 대합실의 모습입니다. 역무원이 상주하지 않는 나무로 지어진 작은 역입니다. 출입구에 IC카드 접촉을 위한 단말기가 설치되어 있는 게 인상적입니다. 20세기에 멈춰 있는 것만 같은 무인 간이역의 대합실에 IC카드 단말기가 덩그러니 서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이색적입니다. 이곳과는 거리가 상당히 먼 또다른 역에서도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있어 재밌습니다.

▲ IC카드 단말기만 덩그러니 있는 무인역

(2022년 12월, 도카이도 본선 네부카와역)

띠용...? 이 작은 역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적도 있는 모양입니다.

어렵게 찾아왔습니다 ㅋㅋ... 이 장면인 듯

역 밖으로 나왔습니다. 전형적인 일본 간이역의 모습입니다. 저는 이런 나무로 지어진 역의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역 앞에는 어김없이 자판기가

따사로운 봄 햇살을 만끽하면서 역에서 나와 목표로 한 촬영 포인트까지 뚜벅이를 시작합니다. 일본 산간 마을의 작은 도로를 걷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유루캠의 한 장면 속에 들어온 것만 같습니다.

한 15분 정도 걸으니 목표로 한 철교가 보이네요! 구글지도로 하쿠비선 일대를 뒤져 찾아낸 포인트입니다 ㅋㅋㅋ 구글지도로 계획한 포인트가 실제로 눈앞에 펼쳐질 때의 짜릿함은 말로 표현을 다 못 합니다.

포인트 도착! 하쿠비선 철교가 부드럽게 휘면서 타카하시강(高梁川)을 건너는 곳입니다. 타카하시... 리에 ㅎㅎ... 그나저나 이곳은 일본 철덕들 사이에서 유명한 포인트인지

저 말고 또다른 사람도 이내 대포 카메라를 들고 와 한 자리 차지하더군요 ㅋㅋㅋㅋ 옆에 펼쳐진 삼각대는 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도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이 아저씨하고는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나눴습니다. 역시... 국적불문 동족은 동족을 존중하는 법입니다.

요건 그냥 열차 기다리다가 발견한 달팽이인데 엄청 커서 신기해서 한 컷, 보통 우리나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명주달팽이보다 훨씬 크더라구요.

이윽고 때가 되니 오카야마 방향으로 느긋한 야쿠모 381계 전동차가 지나갑니다.

사실 이날은 미리 알고 갔던 특급 야쿠모 운행 시간표가 전부 무용지물이 되었을 정도로 철도 운행에 심각한 지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옆에 계신 일본인 철덕 아재는 실시간 운행 정보가 있는 건지 그분이 촬영을 준비할 때 눈치껏 저도 카메라를 쥐면 놓치지 않고 열차를 담을 수 있었습니다 ㅋㅋㅋ

아저씨 덕분에 손쉽게 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아래로 내려와 좀 더 철교에 가까이 접근했습니다. 촬영 각도를 바꾸니 이런 느낌의 사진이 나오네요. 이번엔 요나고, 이즈모시 방향으로 273계 전동차가 지나갑니다.

양방향 보통열차들도 한 번씩 지나갑니다.

조금 더 기다리니 이번에는 오카야마 방향으로도 273계 특급 야쿠모가 지나갑니다. 각 방향 1시간에 1대 수준으로 자주 지나다니는 열차다 보니 조금만 기다려도 양방향 야쿠모를 많이 담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중앙선 안동 이남 구간에서는 하루 종일 기다려야 열차 몇 대 담고 끝나기도 하는데 그에 비하면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