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오늘의 BGM은 아르메니아 국가입니다.

1.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탑니다.
근데 이것도 말이 고속버스지 사실 마슈르카(봉고차)입니다.
사전예약이 필요한데, 저희는 6일차 아침에 호텔을 통해 예약했습니다.
기사 아저씨는 조지아인이었고, 승객은 러시아인 3명, 아르메니아인 1명, 필리핀인 1명, 그리고 한국인 2명이었습니다.

2. 한 시간 정도 달리니 국경이 나옵니다.
예레반까지는 네다섯 시간을 더 가야 되는데, 문제는 산길이 어마무시한데다 도로 포장 상태가 영 좋지 않았습니다.
멀미를 잘 안 하는 편인데 정말 오랜만에 멀미를 했고, 같이 탄 러시아인 한 명은 아예 토하기까지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국경에서 입국 심사를 하는데 입국 심사관이 동료에게 꼬레아 어쩌고 저쩌고 하더군요.
아마 한국인이 아르메니아에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것 같았습니다.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아르메니아에 180일, 조지아에 360일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며, 아제르바이잔 입국 시에는 공항에서 도착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입국 심사가 끝나고 아르메니아 쪽에 있는 휴게소 쪽에서 쉬고 있는데, 기사 아저씨가 저희보고 한국 여권 구경해 봐도 되냐고 물어 보셨습니다.
보여 드리면서 삼성? 삼성! 하고 왔습니다 ㅎㅎ

3. 차를 타고 가는데 왼쪽에 호수가 보입니다.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큰 호수, 세반 호수입니다.
아쉽게도 차에서 내려 제대로 사진을 찍을 기회는 없었습니다.
참고로 아르메니아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인데, 동쪽의 아제르바이잔과 서쪽의 터키와는 원수지간이라 해상무역을 위해서는 북쪽의 조지아의 항구를 빌려 써야 합니다.
남쪽에 이란도 있기는 한데, 이란이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데다가 이란의 항구까지는 한참을 가야 하기 때문에 아르메니아로서는 좋든 싫든 조지아와 친하게 지낼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한편 조지아는 아르메니아가 싫은 것은 아니지만 아제르바이잔, 터키에 경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아르메니아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밖에 없습니다...
(바쿠에서 이스탄불을 잇는 송유관이 조지아 영토를 지나가고, 조지아는 이로부터 적잖은 돈을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원래는 아르메니아 영토를 지나갈 계획이었으나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에 전쟁이 나면서 백지화되었습니다.)
얼마 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의 전쟁 때에도, 세르비아가 아르메니아 지지를 선언하며 군수물자를 수출하러 하였으나, 조지아에서 세르비아의 무기를 실은 선박을 돌려보내는 바람에 무산되었던 바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아르메니아로서는 러시아가 미워도 가깝게 지낼 수 밖에 없습니다...

4. 예레반에 도착해 호텔 체크인을 하고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먼저 콤포트(과일을 설탕물에 넣고 달여 만든 동구권의 음료)로 목을 축입니다.
같이 여행간 친구가 콤포트를 좋아해서 거의 매일 마셨는데, 마시다 보니 저도 맛이 들렸습니다.

5. 메인 메뉴는 뜬금없는 오스트리아식 소시지 구이였습니다.
여담이지만 오스트리아는 이번 전쟁에서 아르메니아 지지 의사를 밝힌 국가 중 하나입니다.
(종파는 다르지만) 같은 기독교 국가이고,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터키가 싫어서 아르메니아 편을 들었다는 게 정설입니다.
프랑스, 독일 등 다른 서유럽 국가들도 아르메니아 편을 들고 싶어했지만 코시국의 영향도 있고, 조지아가 길막하고 있다 보니 실질적으로 도와줄 길은 딱히 없었다고 합니다.

6. 점심을 먹고, 현지 여행사에 들러 다음날 투어 계획을 확정하고 나오니 애매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시내 구경이나 하다 호텔에 들어가기로 합니다.
캐스케이드 공원인데, 원래 달동네가 있던 언덕이었는데 도시 재개발을 하면서 돌계단을 만들고 조각공원과 미술관을 함께 만들었다고 합니다.
미술에는 별 흥미가 없어 조각만 구경하다 왔습니다.

7. 호텔에 들어가 잠깐 휴식을 취하다, 해가 지고 난 후에 다시 나왔습니다.
택시를 타고 계몽자 성 그레고리오 성당으로 갔습니다.
트빌리시의 삼위일체 성당에 비하면 좀더 투박하면서 심플한 느낌이었습니다.
역사는 의외로 오래되지 않았는데, 아르메니아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지 1700주년이 되는 2001년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초대 수장이자 아르메니아의 수호성인인 계몽자 성 그레고리오의 성유물이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와 계몽자 성 그레고리오에 대한 설명은 다음 여행기에서 천천히 드리겠습니다.

8. 조금만 걸어가면 예레반 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공화국 광장이 나옵니다.
소련 시절에는 레닌 광장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정부청사 건물과 아르메니아 역사 박물관이 있는 곳입니다.

9. 이게 제1 정부청사입니다.

10. 저녁은 근처 식당에서 먹었습니다.
이슐리 쿠프타라는 경단 요리입니다.

11. 감자 고로케와 돌마입니다.
터키를 오질나게 싫어하는 나라인데 돌마를 자기네 음식이라고 당당하게 파는 것을 보고 살짝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터키와 아르메니아뿐만 아니라 아제르바이잔, 그리스, 불가리아 등도 음식이 다들 비슷비슷하고, 자기네가 원조라고 싸우는 게 일상이라고 합니다.

12. 아르메니아 맥주를 마시면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아르메니아 문자는 무슨 수학 기호처럼 생겼습니다.

이날은 트빌리시에서 예레반으로 이동하는 데 반나절을 넘게 써 버렸기 때문에 여행기가 짧습니다.
앞으로도 여행기가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도 있는데, 실제로 여행이 길어지니 저도, 제 친구도 지쳐서 아르메니아는 쉬엄쉬엄 다니긴 했습니다(그 전에도 쉬엄쉬엄 다니긴 했지만서도...).
댓글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7-08 07: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