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코카서스 3국'이라 하면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를 말합니다.
몇 달 전에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에 전쟁이 일어나서 잠깐 이슈가 되기도 했죠.
제가 평화롭게 다녀온 나라에 전쟁이 났다니 형언하기 힘든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런 이슈가 있었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생소한 나라들이고, '그런 나라도 있었냐'라고 되묻는 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마침 어제 우즈벡 여행기를 올렸는데, 같은 구소련 출신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는 만큼 오늘부터 코카서스 3국에 다녀온 경험을 천천히 풀어 보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우리나라에서 코카서스 3국으로 갈 수 있는 직항은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갈 때는 카자흐스탄, 올 때는 러시아에서 환승을 했는데, 따라서 이 나라들의 여행기도 짧게나마 포함되어 있습니다.
방문하게 된 다섯 나라들이 모두 구소련 소속이었던만큼, 소련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오늘의 BGM은 소비에트 연방 찬가입니다.

1. 인천국제공항에서 카자흐스탄의 국적기 에어 아스타나를 타고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로 향합니다.
기내 잡지에 인천에 대한 여행 정보가 있어서 사진을 한 장 찍어 보았습니다.
에어 아스타나는 현재 어떠한 항공동맹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지만, 인천-아스타나 구간에 한정해서는 아시아나항공에서 마일리지 인정을 해 준다고 합니다.

2. 8시간의 비행 끝에 아스타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수많은 택시 삐끼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탑니다.
가는 도중에 왼쪽으로 나자르바예프 대학이 보입니다.
나자르바예프가 뭔고 하니, 소련 해체 당시 카자흐스탄의 공산당 서기였고, 초대 대통령이었으며, 지금은 국가안전보장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양반입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작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스스로 사임하였고, 지금은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토카예프가 대통령입니다만 지금도 카자흐스탄의 실권자로서 군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의 퇴임 이후 수도 아스타나의 이름이 누르술탄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누르술탄'이 '아스타나'였던 시절에 다녀왔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냥 아스타나라고 부르겠습니다.

3. 저녁으로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썹니다.
마늘바게뜨에 와인까지 추가했는데 한국 돈으로 13000원이 나왔습니다.

4. 슈퍼에 들렀는데 러시아 맥주 발티카를 팔고 있었습니다.
캔이 정말 크고 아름답습니다.
근데 한 캔에 600원도 안 합니다(...)
발티카는 0번부터 9번까지 있는데 맛이 조금씩 다르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3번, 5번, 7번은 마셔 봤고 이번엔 무슨 맛을 마셔 볼까 하다가 0번을 골랐는데... 네 무알콜 맥주였습니다...
'비어칸'이라는 맥주를 한 캔 더 샀는데 그 맥주는 무려 10도짜리 맥주라서 맛의 천국과 지옥을 오가다 잠들었습니다.

5. 2일차 아침입니다.
9시에 호텔을 출발했는데도 밖이 깜깜하더군요.
우리나라로 치면 광역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버스 시간표도 없어 꼬박 1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날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28도였는데, 코털 안에 성에가 끼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무튼 그렇게 개고생해서 찾아간 이곳의 이름은 알지르 박물관 및 추모공원입니다.
과거 이 자리에는 소련의 굴라그(정치범 수용소)가 있었다고 합니다.
여성 수감자들만 있었다고 하는데, 카자흐스탄이 독립한 후 나자르바예프의 지시로 박물관 및 추모공원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천천히 설명하겠지만 나자르바예프는 독재자는 맞는데 저 위쪽에 김정은처럼 정신나간 사람은 아니고 나름의 업적과 최소한의 개념이 있는 사람입니다.

6. 수감자 중에는 당연히 고려인도 있었습니다.
잠시 묵념하다 왔습니다.
정말로 소련 체제에 반기를 들고 끌려온 사람도 있었겠지만, 무고하게 끌려온 사람도 많았다고 합니다.
만민의 평등과 노동자의 단결을 내세웠지만,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만민에 대한 만민의 감시와 새로운 계급체제의 등장이라는, 공산주의 리상락원의 씁쓸한 현실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박물관에 갈 때는 버스를 타고 갔는데, 돌아오려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니 승용차가 한 대 서고 아주머니 한 분이 내립니다.
저희보고 '아스타나?' 하시길래 그렇다고 하니 타라고 합니다.
아저씨랑 시내 가는 길이니 인당 한국 돈으로 1500원씩만 주면 아스타나까지 태워 주겠다고 하셨습니다(물론 적절한 바디랭귀지로 유추한 내용입니다).
갈 때 버스요금이 900원이었으니 이 정도면 상당히 양호하지요.
예전에 우즈벡도 가 봤는데, 이쪽 나라는 따로 등록된 택시는 별로 없고 일반 승용차들이 즉석에서 택시로 변신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승객이 차 주인과 '어디까지 가는 데 얼마' 이런 식으로 흥정하는 식이죠. 택시... 라기 보다는 즉석 현금 카풀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7. 여튼 친절한 아저씨 아주머니 덕분에 아스타나에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여기는 유목민족의 천막을 본따 만든 한 샤티르 쇼핑몰입니다.
점심은 여기서 해결하기로 합니다.
그나저나... 저 파랗다 못해 검어 보이는 하늘 색깔은 지금 다시 봐도 뼛속까지 추위가 스며듭니다.

8. 점심은 뜬금없는 터키 식당에서 먹습니다.
실제로 카자흐는 튀르크계 민족으로 터키와 사이가 좋은 편이라고 합니다.
다만 카자흐는 북방 황인종의 얼굴을 거의 그대로 가지고 있고, 터키는 혼혈이 되어 사실상 백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요.

9. 한 샤티르 앞에는 공원이 있는데, 이름이 연인의 공원이라고 합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남정네 둘이서 어슬렁거리다 왔습니다(...)

10. 누르 아스타나 모스크입니다.
눈의 색깔과 같아 신비로운 분위기였습니다.
카자흐스탄은 이슬람교 국가이기는 하지만 술을 즐겨마시는 등 세속적인 경향이 강합니다.
튀르크 자체의 성향도 그렇고, 거기에 소련의 종교 탄압이 더해져서 스스로도 '말로만 무슬림'이라고 자학하면서 다닌다고...

11. 카자흐스탄은 석유와 천연가스가 나오는 자원부국입니다.
그래서 아스타나 시내를 돌아다녀 보면 이런 고층빌딩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아스타나 자체가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라'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건설된 도시입니다.
예전 수도인 알마티는 국토의 남쪽에 치우쳐 있었고, 국토의 균형 발전 그리고 북쪽에 몰려 사는 러시아계 주민들에 대한 회유책으로 천도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신도시라서 그런지 도로도 넓고 전반적으로 쾌적한 편이었습니다.

12. 아스타나의 랜드마크 바이쩨렉 타워입니다.
튀르크 신화에 따르면 하늘에서 내려온 새가 '생명의 나무'에 내려와 황금알을 낳았는데, 사악한 뱀이 이 알을 먹어치웠다고 합니다.
새는 이에 굴하지 않고 1년에 한 번씩 새로 알을 낳았는데, 이 새와 뱀의 싸움이 선과 악의 싸움이 되고 계절의 변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바이쩨렉은 이 생명의 나무를 부르는 이름이라고 합니다.

13. 전망대에 올라가 봅니다.
일직선으로 뻗은 공원과 깔끔하게 정리된 시가지 뒤에는 흰 벽에 푸른 지붕의, 마치 우리나라 국회의사당 비슷하게 생긴 건물이 있습니다.
이 나라의 대통령궁이라고 합니다.

14. 날이 너무 추워 바냐(러시아식 사우나)에서 몸을 데우고 갑니다.
물론 내부에서 찍은 사진 따위는 없습니다.

15. 이 날 저녁도 스테이크를 한 번 더 썰어 줍니다.
무려 말고기 스테이크였습니다.
맛은 매우 안정적이었습니다.

예전에 북해도 여행할 적에는 여행계획을 분 단위로 짜서 다니곤 했는데, 여기서는 느긋하게 다니고 저녁을 먹은 뒤에는 대부분 호텔에서 쉬었습니다.
코카서스 3국 여행기라고 했는데 오늘은 코카서스 3국 얘기가 없네요... 죄송합니다.
내일 여행기 뒷부분부터 올라올 예정입니다.
댓글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9-09 04:3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