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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3
익명
2017-07-31 02:11:50
몇 시간 전에 보고 와서 기억이 비교적 또렷한데,
첫번째, '동기의 벚꽃' 연주 부분을 가지고 군국주의 찬양하는거 아니냐고 주장하는 건 어이가 없군요. 보면서 저땐 참 살기 위해 별 짓을 다하는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컸고, 같은 맥락에서 중간에 딸아이(악단장 황정민에게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을)가 기모노 입고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칠 때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지 진심으로 천황폐하만세를 부른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두번째, 조선인을 악인으로 묘사하고 일본인은 악인이 없었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닌 것이 소장, 야마다, 마지막에 조선인 숙소 불지르는 일본인들 등등 따져보면 많습니다. 조선인 중에 악인들은 윤학철(이경영), 송종구(김민재, 소지섭이랑 맞짱뜬 노무계 감독관) 및 몇몇 앞잡이 들이 진정 개xx 급이고 나머지 조선인들 대부분은 그시절 흔하디 흔했을 법한 식민지 징용 노동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황정민의 극중 대사처럼 "누가 조선 종자 아니랄까봐"라든가, 극중 노동자가 "그래도 일본사람이니 우리보다 의식이 깨어있는 가보다(정확하진 않음)." 같은 대사들에서 오히려 우리 민족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모습들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거야 당시에 그렇게 주입식 교육을 받은 노인분들이 곧잘 하는 레파토리 정도로 생각되구요. 또, 그러다가 황정민이 '언제까지 이럴래?'(라고 했나) 하는 부분은 그래도 주인공이니 극을 이끌어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은 일본이 주입교육한 것처럼 조선인끼리 서로 싸우지만은 않겠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는 긍정적으로 흘러가게 되는 발전적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건 일본인 못지 않게 조선인을 괴롭히던 송종구 같은 악질 앞잡이들이 있었다는 건데요. 극전개에 비추어 그 악함을 묘사함이 지나칠 정도였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바로 송종구가 일본인 여학생을 강간하려다 죽이는 부분입니다, 지가 죽여놓고 죄를 소지섭에게 뒤집어 씌우거나, 지도 조선인이면서 조선인 때려잡는 일에 앞장서기도 하구요. 그 점에서 이 부분은 과하게 만들어서 욕을 먹는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요컨대 악질 친일파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의 장면 묘사가 과하여 논란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세번째, 황정민한테 살갑게 대한 일본인 보초들을 조선인들이 죽이는 건 황정민이 극중에서 워낙 마당발 같은 캐릭터이고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니 일본 보초가 살갑게 대할 수 있는 거구요. 이름이 확실히 기억은 안나지만 중간에 조잡한 춘화 그려주고 담배 10개피 받아오는 거래를 해왔던 그 일본인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황정민도 차마 그 보초를 죽이지 못하고 망설이니까 송중기가 대신 죽인 거구요,
마지막, 조선인 임금이나 보상을 조선인 지도자가 반띵으로 해먹었다는 부분에서 일본이 조선노동자들한테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다는 얘기는 제 기억으로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러저러한 명목으로 임금에서 공제된다는 것은 영화 초반부터 야마다가 설명을 해준 것이고 또 역사적으로 그렇다고 들었습니다(생존자 증언). 여기서 윤학철이 개xx인 것은 분명하지만 정당하게 조선노동자들에게 가야할 것을 윤학철이 빼돌린 것이라기보단 소장이 그동안 빼돌린 것을 윤학철과 딜을 하면서 윤학철 계좌로 넣어줬다고 이해했습니다. 결과적으론 같다고 할 수 있지만 맥락은 달라서 적어 봤습니다. 이건 제 기억이 확실치 않으니 여기까지..
제가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대해서 비판하고자 하는 부분은,
첫째, 너무 많은 얘기를 군함도라는 소재에 집어넣다 보니까 내용과 캐릭터 모두 어디서 본 듯한 전형을 보는 듯하다는 겁니다. 단순히 전형적이기만 하다면 그래도 이해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집어넣다 보니 결국은 이야기가 자주 올라가는 동네 뒷산으로 가버립니다. 후반부 전투장면 같은 경우, 정말 군함도의 시의성 보다는 내용이 이렇게 흘러가면 결국 이렇게 되겠구나라는 생각에서 나온 뻔한 결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뻔하기도 합니다.
둘째, 군함도가 가진 시의성이 어느 순간부터 사라지고 황정민 부녀의 눈물겨운 탈출기만 남습니다.
이 거창한 엑소더스를 더 재미나게 만들려면 조미료가 필요하겠죠. 윤학철이나, 깡패 최칠성, 위안부 말년, 광복군 박무영 같은 인물들은
결국 내용을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뿌려진 MSG같은 역할들입니다. 근데 이미 좋은 재료가 많으니, MSG를 뿌려도 적당히 뿌려야 하는데 너무 많이 뿌리다 보니 잡탕이 되어버렸숩니다. 군함도라는 소재를 가지고 뭔가 거창한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엄청 애를 쓰고 돈도 많이 들였지만 영화에서 처럼 총에 맞아 피흘리고 죽어간 조선인들보단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천천히 숨이 멎어갔을 조선인 노동자들이 훨씬 많았을 거라고 생각하면 그 리얼리티의 재현이라는 목표는 몇몇 장면에서의 디테일을 제외하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경영의 역할이 설국열차의 존 허트와 겹쳐지고, 황정민의 모습에서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가 겹치는 건 그래도 괜찮습니다. 배우들이 나름대로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를 시켰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영화를 뜨겁게만 만들려다 보니까 핵심적인 것이 휘발된 느낌입니다. 노동자들이 흘린 피땀의 끈적함과 지하막장에서 내뿜어지는 숨막힐 듯한 후텁지근함은 찾기 힘들고 몇몇 조선인들의 막장 드라마는 두드러집니다. 감독이 의도했든 아니든 말이죠.
사실 상업영화에서 엄청 대단한 메시지나 울림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임을 알고 큰 기대를 안했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명량 이후로 이러한 묵직한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고 하면 진짜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그 점에선 많은 부분이 불만족스럽습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비판 중에선 영화만 봐도 바로 반박가능한 선동성 비판도 많기 때문에 그 부분은 가려서 판단하셨으면 하고, 욕을 해도 영화를 보고 나서 하셨으면 좋겠다고 쓰고 있지만, 이미 쓴소리를 너무 많이 한 것 같군요.
암튼 제가 봤을 땐 이 영화는 국뽕도 일뽕도 아닌 '불편한 진실+상업영화용 서사+아주 약간의 시의성' 정도로 요약할 수 있고, 이 영화의 불만족스러운 부분과는 별개로 나름 재미있고 132분의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그 점에서 류승완 감독의 가장 큰 장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즉, 재미는 어느 정도 보장하나 이 영화만으로 군함도를 안다고 주장할 수는 없으니 역사공부는 각자 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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