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전공 철학교과논리및논술 듣는 학우들에게 고함


안녕하십니까? 학우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어느 새 올드 보이가 되어버린 08학번 철학과 학생입니다. 제가 처음 08학번 신입생으로 들어왔을 때 반갑게 맞아주시던 01학번 선배님을 보고, ‘와, 저 형은 아직도 학교 다니시네?’ 하고 생각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저도 그 선배님과 같은 짬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도 대학원에 진학하신 그 선배님을 볼 때면 08년도에 했던 어쭙잖은 생각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지곤 합니다.

위에 적은 PHIL458 철학교과논리및논술(이하 철학교과)은 참 여러 과의 학우분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철학전공입니다. 경영학과, 심리학과, 국제어문, 정경대의 사천왕 전공들, 심지어 이과대와 공과대로부터도 가감 없는 러브콜을 받고 있습니다. 철학과 학생으로서 타 과의 여러 학우분들이 저희 과 전공 수업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참가해주시는 것이 무척 흐뭇하고 기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수업을 진행하시는 김성호 박사님도 무척 훌륭하신 분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그분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고 그분도 저를 알지 못합니다. 또한 저는 그분이 쓰신 논문을 읽은 적도 없으며 그분에게 수업을 듣는 것은 2015년도 1학기 올해가 처음입니다. 하지만 그 분이 가르치시는 모습을 보면 여러 면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수업이 내용적인 면에서 좋습니다. 낭독과 판서를 번갈아서 사용하시고 중간에 위트도 적절하게 섞어주십니다. 목소리도 귀에 거슬리지 않게 커다랗고, 판서 글씨는 알아보기 쉽게 크고 글씨체도 분명합니다. 주제적으로는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윤리학적인 쟁점들과 이론들을 개괄하고 있는데 무척 쉬우면서도 요점만을 정확하게 설명해주십니다. 저 같은 사학년이야 사실 다 아는 내용이고 좀 더 심도 있는 학습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만, 철학을 전공하지 않는 타과 여러분께는 윤리학이라는,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커다란 시야 하나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뜻 깊은 수업 시간이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수업의 기술적인 면이 좋습니다. 이미 내용적인 면에서 언급했지만, 학우들을 최대한 배려하는 전달방식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게다가 교수님께서는 자신의 강의노트를 그대로 블랙보드에 올려주십니다. 사실 꽤 많은 교수들이, 강의노트에 의존해서 수업을 하면서, 자신의 강의 노트를 결코 학생들과 공유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교수님은 친절하게 구술되어 있는 강의 노트를 공개하고 계신 겁니다. 때문에, 하루 사정이 있어서 수업에 빠진 학생들도 수업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 없고, 후일 윤리학적 주제에 관심이 생겨서 공부할 때 참고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의 인격도 무척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제가 감히 말할 바는 아니기 때문에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수업 시간에 결코 권위적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학생들을 배려하는 언행을 자주 하시는 걸 수업을 듣는 여러분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또한 이미 600명이나 되는 대형 강의를 운영하는 것이 무척 고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들어오겠다는 학생들을 위해서 수십 석의 문을 더 열어주셨습니다 .

여기까지 제가 위 수업에 대해서 생각하는 부분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이 수업을 듣는 학우 여러분의 태도를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이하의 글은 몇몇 학우들에게는 불쾌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게 큰 이익이 되는 일도 아니고, 어느 정도는 학우 여러분의 심기를 거스를지도 모르지만 대학생이 되어서 해야 하는 말에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히 다음과 같은 글을 쓰겠습니다.

저도 여러분도 교수님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상당수 여러분은 지금 위 수업에 소위 말하는 ‘꿀 빨러’ 오신 겁니다. 여러분 중 대다수는 윤리학적 주제들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단지 위 전공이 절대평가고 학점평가에 매우 관대하다는 것을 알고 위 수업을 수강하셨을 겁니다. 저는 여러분이 ‘꿀 빨러’ 오신 것에 거부감이 없습니다. 저 역시 좋은 학점을 주는 수업이 싫지 않고 그런 수업에 호감이 갑니다. 하지만 최소한 ‘꿀 빨러’ 오셨으면 예의는 지키십시오.

여러분은 수업시간에 웅성거리고 담소를 나눌 뿐만 아니라, 핸드폰 벨소리를 켜고 들어와서 시끄럽게 울리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때로는 뭔 웃기는 걸 봤는지 혼자 입을 막고 킥킥 웃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저는 그런 모습을 보이는 분들을 당장 강의실에서 내쫓고 싶어집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최소한의 도리도 모르는 분들이십니까? 그런 여러분의 모습은 무척 비겁하고 간사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엄격하고, 냉담한 교수님들의 수업시간에 감히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있습니까? 철학과 전공은 아닙니다만, 제가 알고 있는 한 엄한 교수님의 수업에서 학우들이 숨소리마저도 조심하는 걸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 수업이 미치도록 졸립고 따분해도 학우들이 교수님에게 찍히는 걸 두려워해서 무척 긴장하고 수업을 듣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설마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일이 아니면 도리를 지킬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까? 아니면 폭력과 힘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설설 기는 짐승에 다름 아니었습니까?

여러분의 이런 이중적인 태도는 비겁하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걸 분명히 알아야합니다. 제가 좀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태도로 철학교과 수업을 들으려면 최소한 다른 전공수업 시간에도 똑같이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이 수업에서 나가세요.”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한 후배님께 듣기로 지난 학기에 한 개념을 밥 말아먹은 타과의 시러배 하나가 강의 중간에 뒤늦게 기어 들어와서 맨 앞자리에 앉더니 대놓고 딴 짓을 하다가 교수님께 혼나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끝까지 대들다가 끌려 나갔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수업시간에 딴 짓을 하건, 졸건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어떤 교수님들은 그런 행동을 싫어하시지만, 저는 그것이 학생의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더 이상 시키는 대로 복종하기만 하는 고등학생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공상을 할 수도 있는 것이고, 소설을 쓰고 싶으면 소설을 쓸 수도 있는 것이고, 카톡을 하고 싶으면 카톡을 할 수 도 있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돌아오는 책임만 감수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이 수업에 들어오는 몇몇 여러분은 자신의 행동을 책임질 생각은 전혀 안하고 권리만 누리려고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A학점은 챙겨가고 싶은데 수업 시간에 잠을 자고, 딴 짓을 하는 것도 모자라서 떠들고 시끄럽게 잡음을 만들고, 심지어는 그것을 지적하는 교수님에게 대들기까지 하고 싶습니까? 미친 거 아닌가요? 여러분이 만약 그렇게 하고 싶어 한다면 여러분은 그 강의에 들어올 자격이 없습니다. 강의실 바깥에서 떠드십시오. 물론 출석도 하지 말고 대출도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양심 있는 대학생이자 민주사회의 시민의 올바른 자세 아니겠습니까?

또한 여러분이 수업 시간에 들어와서 그렇게 잡음을 만들고 담소를 나누는 것은 철학교과 수업을 열심히 듣고자 하는 학우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시길 바랍니다. 위에서 상당수 학우분들을 ‘꿀 빨러’ 온 학우들로 일반화해서 무척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위 수업에 진정 흥미가 있어서 열심히 들으러 온 학우들도 있고, ‘꿀도 빨며’ 수업도 열심히 듣고자 하는 학우들도 많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아니면 여타 전공에서 지친 심신을 한 숨의 잠과 다른 과의 학우들의 용모를 관찰하며 보내는 시간으로 달래려는 학우분들도 있을 겁니다. 이 모든 학우분들의 공통점은 최소한 주변 학우들에게 피해는 안 준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신 못 차리고 떠드는 분들은 도대체 개념을 여러분 집과 기숙사와 자취방에 내던지고 몸만 나오신 겁니까? 그 개념 있는 곳으로 돌아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강의실 중간쯤 앉으면 뒷자리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앞쪽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겹쳐져서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꼭 드리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떠드시는 분들, 혹시 제 등록금 대신 내주실 건가요?” 저는 아쉽게도 무지의 베일에서 선택을 잘못했는지 그다지 부유하지 못한 집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 때문에 저는 제 등록금으로 듣는 강의 하나하나가 무척 소중합니다. 그런데 강의시간에 떠드는 여러분은 그런 저와, 다른 학우들의 소중한 수업권을 침해하고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런 떠드는 분들은 총 안 든 강도이자 칼 안 든 도적입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보다 더 나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악행에 대해서 심판을 받을 테지만 여러분은 A학점을 챙겨갈 테니까요.  
분명히 말하건대, 앞으로 떠드실 분들은 제 등록금 중 일부를 분납해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지금까지 철학교과 수업시간에 떠들고 부산스럽게 만드는 분들에 대해서 저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그 분들은 비겁하고 간사한 분들이며,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지 못하는 강도와 같은 분들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은 수업을 들을 자격이 없으며 강의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그분들이 해야 할 마땅한 도리라고 말입니다. 저는 그분들께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위와 같은 행동을 하신 여러분, 교수님의 선의와 호의를 악용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호의와 선의를 당연한 권리로 착각하지만, 여러분은 그 둘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걸 아시는 분들이고, 설명 몰랐다고 하더라도 이야기를 들으면 납득할 분들이기에 대학교에 오시고, 수업을 듣고,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악용하셨다면, 이제는 그러지 마시길 바랍니다.  

차라리, 여러분 전공의 가장 엄하고, 냉담하고, 학점에 무자비한 교수님 수업에 들어가서 위와 같이 행동하십시오. 미친 짓이라고요? 아닙니다. 최소한 그것은 하나의 전위적인 몸짓일 수 있습니다. 교단이라는 권력에 대항에서 나의 자유를 표현하는 하나의 Protest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철학교과 수업에서 그러는 것은 그렇게 이해할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은 교수님이 관대하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그것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러분이 교수님의 관대함을 착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이런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만약 학기가 끝날 때까지도 위와 같은 관행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저는 김성호 교수님께 현 상황을 분명하게 말씀드릴 겁니다. 만약 교수님이 개의치 않으신다면 철학과 학과장님께 말씀 드릴 것이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총장님께 편지를 쓰고 찾아갈 생각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김성호 교수님의 수업이 착취당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서 지킬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이 글을 보시며, “아 좋은 게 좋은 건데 왜 분란을 만들지?”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 있을 겁니다. 그런 분들에게 저는 다음과 같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잘못된 건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잘못된 건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 잘못된 것을 통해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보고 있더라도 말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언젠가는 그 잘못된 것이 쥐도 새도 모르게 우리들을 안에서부터 좀먹고 더 큰 피해를 양산한다는 역사적인 사례들을 분명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부디 철학교과 수업을 듣는 학우분들이 제 호소에 귀를 기울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제 호소가 한낮 어리석은 고학번의 꼰대질이 아니라 학우분들의 의식 변화의 작은 단초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학우분들이 수업시간에 담소를 나누거나, 부산스럽거나 시끄럽게 소리를 내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 둘째 잠을 자고 딴 짓을 하는 와중에라도 교수님의 수업을 잠깐씩 듣고 한 번 그 의의와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볼 것, 딱 두 가지입니다. 특히 둘째는, 윤리학이라는 학문이 민주사회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서 얼마나 중요한 학문인지 생각해보았을 때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여러분의 변화를 기대합니다.

“잘못된 건 잘못된 겁니다. 그리고 바로 잡아야 합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9-09 19:2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