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의 발렌타인 데이에 맞춰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 하나가 트위터 공간에서 많은 논란을 불렀고, 그 기사를 나흘이 지난 뒤 발견한 내 심기를 심각하게 건드렸다. 유학 경험이 있는 여성은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결혼 상대를 구하려는 남성들 입장에서 <감점> 대상이라는 거였다.
http://media.daum.net/entertain/star/newsview?newsid=20140214105404790
이 기사의 백미는 역시 기사 마지막 부분에 등장한 눈부신 이중기준일 것이다. 남성이 유학을 하는 것은 사회 적응력을 키우는 진취적인 행위고 여성이 유학을 하는 것은 "부모 곁을 오래 떠나가 있는" 것이며 그러면 "생활이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에 결혼 상대로는 기피한다는 것. 똑같은 유학이지만 남자가 하면 스펙이 되고 여성이 하면 감점요인이 된다는 문장이 버젓이 뉴스가 되는 사회.
<남자이며 유학 경험이 있는> 나는 이 기사를 보고 정말 어마어마하게 화가 났다. 그 "부모 곁을 오래 떠나" 혼자 사는 여성들은 내 친구고 동료들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지들 청년시절 문란한 성생활은 남자의 훈장이고 로맨스지만 결혼할때 상대는 순결한 여성이었으면 좋겠다는 식의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를 지절대면서 머리속에 뇌 대신 스펀지를 넣어 다닌다는 사실을 자랑하는 자들이 품평회를 열어서 이 사람은 몇 점 이 여자는 몇 점 점수를 메길 상대가 아니다. 미국의 혼전순결 서약을 보고 여성성을 "남성인 아버지가 남성인 남편에게 양도하는" 것 쯤으로 보는 저렴한 멘탈리티를 비웃을 정도의 지성이 그들의 안구 뒤에 자리한 스펀지에서 꽃피기를 기다리려면 400년 정도는 걸리겠지.
나는 트위터를 통해 내 분노를 표현하기로 마음먹었다.
유학한 여자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돌아서 뭔가 했는데 이제서야 기사를 발견했다. 다행스런 일이다. 한국 남자들 중에 멍청한 자들이 저렇게 많으니 우수한 여성들이 머저리랑 결혼해서 고생하는 일도 확 줄겠지.
문란같은 소리 하고있네 평생 자위나 하던 찌질이들이. 만 번 양보해서 그 여성들의 연애관이 프리하고 남자 취향이 태평양만큼 넓어도 너희랑은 안 자줘 이 무능한 주제에 얼까지 빠진 멍청이들아. 결혼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거라 자위하며 평생 야동이나 보렴.
어차피 너희들은 평생 동정으로 살텐데 남이 문란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니 이 기념비적으로 머리가 나쁜데다 사회에 별 도움도 안 되는 존재들아. 왜? 유학 갔다와서 문란할 줄 알았는데 너한텐 튕기니까 화나든? 너희가 오죽 찌질하면 그랬겠니. 야동이나 보라고.
일단 여기까지 쓰자 정말 <적극적으로 멍청한> 자들에 대한 분노는 어느 정도 해소된 관계로 그 다음 부터는 평소 잘 안하는 훈수 두기를 시전하기로 했다.
유학한 여자는 진짜로 문란하다고 착각하는 머저리들은 부탁이니까 꺼지시고, 거기 시류에 편승한 너희들. 잘 들어 바보들아. 그냥 솔직하게 말해. 유학까지 갔다왔으면 남자 스펙 많이 볼 거 같은데 자신이 없다고. 안 그런 여자들이 훨씬 많아 이 친구들아.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그런거 신경 덜 쓰는 사람도 나타난다고. 걔들은 뭐 유학가서 다 람보르기니 타고 다녔겠냐. 결혼적령기 세대가 돈 없는게 그 세대 탓만도 아니고. 솔직하게 말하면 그런거 필요없다는 사람 중에 너랑 맘맞는 여자도 나타날지도 모르잖아.
근데 왜 시덥잖은 두 푼 짜리 <싸나이 자존심> 챙기려고 남의 집 귀한 딸을 신 포도로 만들어 이 반푼이들아. 솔직하게 말하고 "앞으로 열심히 살게요" 그랬으면 좋은 여자 만났을지도 모르는 것들이 괜히 남들 따라 어깨 힘주다 같이 욕먹고 있어 멍청하게.
그러지마 이 멍청한 친구들아. 니들이랑 같이 "그런 여자 문란해" 하는 머저리들이 인생 대신 살아주니? 너 고독하게 늙으면 같이 살아줄거 같애? 니들 인생이야. 니들 머리로 생각하고 책임을 져. 스펙 덜 보는 여자 많어 바보들아. 쫄지말고 솔직해져.
2월 18일에 작성된 이 연작 트윗은 그럭저럭 많은 피드백을 받았다. 속이 후련하다부터 "말이 좀 심하다"는 식의 점잖은 지적까지. 후자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았기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흘렀고 그 사이 저 주제, 그러니까 "유학한 여성을 기피하는 남자"에 대한 갑론을박이 트위터 공간에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그러다 참 흥미로운 경향 하나를 발견했다.
내 기준에서 "부모 곁을 떠난 여자는 문란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말은 거의 "정화수 떠다 놓고 장독대 앞에서 빌면 바라는 바가 이루어진다" 수준의 발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남성이나 여성이나 섹스할 상대와 횟수는 범죄에 연루되지 않은 이상 자신이 고르며, 부모의 감시라는 요소는 그 횟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여성은 혼자 살면 자고 싶은 상대와 얼마든지 잘 수 있을 테고 그러니 당연히 문란해 진다고 착각하는 남성들은 왜 자신들은 긴 자취생활 동안 만족스런 성생활을 영위했던 시기가 2%도 안 되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런 비이성적인 주장을 하는 남성들의 비이성적인 발언에 대해 침묵하고 있던 남성들이 남자에 대한 비아냥에는 "굉장히 이성적인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문제를 그저 성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남자들의 열폭으로만 받아들이고 조롱해서 될 일인가. 여성성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라는 문제와 한국의 가족관에 대한 고려 없이 그냥 놀리기만 한다고 누가 이득을 보나"
흥미로운 지적이었다. 한 달 반 정도가 지난 4월 6일에 나는 다시 연작 트윗을 하나 작성했다.
여성의 자취/유학이 결혼정보회사를 통한 결혼 상대 찾기에서 <감점/기피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이야기가 요 몇 달 사이 여러 각도로 보도가 됐다. 나는 화가 났고 그런 사고를 가진 남자들을 다각도로 비웃어줬다.
내가 주로 쓴 비아냥은 "너희들은 어차피 현실 세계의 여자와 만나서 데이트 신청할 재간도 없는 놈들이어서 인터넷에서 저런 소리나 하는 거지"라는 거였다. 인정한다. 유치한 논리고 적어도 수치로 제시할 근거 데이터는 없는 소리다. 사과할 생각은 없지만.
꽤 열심히 반박을 받았다. "너 유학한 여자냐"는 당연한 수순이지. 해외 사는 남자다 멍청이들아. 그 와중에 눈길을 끈 건 참 진지한 문제의식 제기였다. "이 문제를 그저 남자들의 자존감 부족으로 해석해서 될 일인가. 그렇게 조롱한다고 해결되나".
타당한 지적이다. 그런데 난 저 태도에서 위화감도 하나 느꼈다. 갑자기 등장한 고차원적 분석에 대한 내 느낌은
<이들은 남자가 조롱을 받는 상황을 참 못 견뎌 하는구나>
라는거다. 비슷한 조롱을 여성이 받았을때 과연 저런 진지한 반론이 나왔을까.
남자 키 180 이하는 루저라는 발언에 대해 남자들이 보인 반응은 지나치게 격렬했다. 나는 그 자체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외모로 비아냥을 받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나 그와 비슷한 혹은 더 심한 조롱이 여성에게 가해졌을때 남자들은 무엇을 했나.
혹시 대답하기 싫다면 내가 대신 대답해 드리지. "농담이다. 위트다. (대상이 유명인이라면)그 정도는 유명세로 생각하고 저 쪽이 참아야 한다. 그럴수도 있지". 이렇게 관대한 사람들이 왜 키 180 이하 루저 발언 하나는 몇 년째 용서를 못 할까.
혹시 "남자는 여성에 대해 편견을 갖고 조롱해도 쉽게 용서받을 수 있지만 그런 남성을 명확한 데이터 없이 비하하고 조롱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제발 그 숭고한 잣대를 여성을 조롱하는 남성에게도 좀 적용해 보시길 바란다.
아직까지 이 주장에 대한 제대로된 반론은 듣지 못했다. 그래서 저 의견에 더 첨부할 것이 별로 없는 관계로 같은 내용을 잠시 반복하는 것을 용서해 주시길 바란다.
저들은 정말 남자가 조롱을 받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런 이중기준(니가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을 눈치채지 못하거나, 눈치채고 있지만 모른척 하거나, 심한 경우 그것이 이중기준인 것을 알고 있으며 그 이중기준 자체를 남성이 여성보다 강하고 우월하다는 저렴한 인식의 근거 가운데 하나로 활용하기도 한다. "남자랑 여자랑 같냐"라는 단순한 문장에는 저런 혐오스런 힘자랑도 포함되어 있다.
난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꺼리낌없이 머리속에 뇌 대신 스펀지를 넣어 다니는 남성들을 조롱하고 비웃을 것이다. 그것이 신사적인 행동이 아니란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에 직면했을때 똑같은 행동을 해도 남성은 칭찬을 받거나 아무 비난도 받지 않고 오로지 여성만 비난을 받는 사회에서 "남성들이 비이성적인 발언을 한다고 그들을 조롱하는 것은 옳지 않다" 따위 서 푼 짜리 도덕관으로 내 발언을 자제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
그런 식의 먹지도 못할 도덕관 때문에 앞으로도 오랜 시간 동안 "남성이 여성을 조롱하는 것은 위트, 여성의 입장에서 그런 남성을 조롱하는 것은 비이성적이고 무례하며 생산성 없는 행동"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기준이 고착되는 것이 훨씬 위험하고 해로운 일이다. 나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일에 도움을 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
게임은 공정해야 한다. 남성이 여성을 생각없이 먼저 조롱한다면 적어도 1.1배 정도의 강도로 조롱을 당할 각오는 있었다는 소리겠지. 각오들 해 두시길.
http://unknownbeholder.blogspot.jp/2014/06/blog-post_17.html?m=1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7-05 00:38: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