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페이지 전에 올라온 차범근 관련 포스팅에 제가 칼 하인츠 루메니게와 칼 하인츠 푀르스트를 착각하고 댓글을 달았는데 그 포스팅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서 차범근이 활약하던 시절 한국 축구에 대한 몇가지 기억을 마구잡이로 풀어봅니다. 신세대 음슴체입니다.   

1. 차범근의 위상
이젠 논란거리도 아닌 주제겠지만 그냥 엄청 났음. 미디어가 별로 발달되어 있지 않았던 그 시절에도 매주 차범근의 활약상을 언론을 통해 접할 수 있었음. 생중계는 안해줬지만 크게 활약했던 경기는 녹화로 볼 수 있었고 일간지 뿐만 아니라 스포츠 전문지(당시엔 스포츠 신문 뿐만 아니라 스포츠 잡지도 상당히 많았음) 등 지면을 통해서도 꾸준히 활약상이 보도되었음. 그냥 활약이 아니라 실로 '눈부신' 활약이었음. 당시 세계 최고 리그인 분데스리가에서 케빈 키건(잉글랜드)과 더불어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꼽혔음. 그래서 현지(서독) 축구 전문지 키커(KICKER)의 표지 모델로 자주 실렸음. 표지 모델로 실리면 그걸 또 국내 언론이 받아서 대서특필했음. 

2. 차범근이 뛰었던 프랑크푸르트나 레버쿠젠은 당시 리그에서 강팀은 아니었음. 당시 리그 최강팀은 함부르크SV와 바이에른 뮌헨이었음. 특히 레버쿠젠은 중하위권 팀이었는데 차범근 영입 후 중상위권으로 도약하고 나중엔 기어코 유에파 우승까지 함. 레버쿠젠으로 옮길 때 함부르크에서도 차범근을 탐냈는데 만약 레버쿠젠이 아닌 서독 국가대표가 즐비했던 강팀 함부르크로 가서 호르스트 흐루베쉬와 짝을 이뤘다면 (내 생각이지만) 훨씬 더 많은 골을 넣었을 수 있었을 것임. 당시 함부르크의 스카웃 담당이었던 귄트 네처가 후에 그 때 차붐을 영입못한 걸 두고두고 후회한다고 술회했던 인터뷰를 본 기억이 있음. 당시 나도 강팀으로 안가고 하위팀인 레버쿠젠으로 옮긴다고 발표 났을 때 상당히 아쉬웠었음. 바이에른 뮌헨은 리그 최고 스타 플레이어인 루메니게가 있으니 차붐의 필요성이 다소 떨어진다고 쳐도 함부르크에겐 차붐이 딱 필요한 팀이었음. 당시 레버쿠젠이 공은 못차도 돈은 안꿀리는 집이었는데 그래서 아마 차붐에게 크게 베팅한 게 아닐까 하는 그냥 내 생각. 

3. 차범근이 서독 진출(79년)하고 나서 86월드컵까지 그 오랜 기간동안 국가대표 경기(A매치)를 뛰지 못함. 클럽에서 보내주질 않았음. 클럽에서 국대 차출 안해준 이유가 보내주면 한국에서 다시 서독으로 안보내 줄 거 같아서라고 들었는데 이게 진짠지 농담인지 아직도 헷갈림. 차범근이 가고 나니 한국 대표팀 전력이 (내 생각에) 팍팍 내려감. 완전 차포 다 떼고 장기 두는 느낌이었음. 그래서 경기 볼 맛이 안났음. 박지성이 안뛰는 국대 경기 보는 것 같은 느낌 곱하기 10배 정도의 느낌이었음. 

맨날 국대 경기 보다가 '차범근만 있었어도' 이런 소릴 하곤 했었음. 특히 기억나는 아쉬운 경기(or 대회) 몇 개만 꼽자면 80년 아시안컵 결승전 쿠웨이트전. 쿠웨이트가 개최국이었고 예선에서 우리가 3대떡으로 발랐는데 결승전에서 반대로 3대떡으로 발림. 편파 판정도(당시 중동의 오일 머니의 위력은 엄청났음) 있었지만 준결승에서 북한에게 대역전승(2:1) 하느라 진을 빼서 그런지 결승에서 힘도 못써보고 졌는데 그 경기 보고나서 차범근만 있었어도, 아니 허정무만 있었어도(허정무는 당시 아인트호벤 입단) 쿠웨이트 따위는 5대떡으로 바르는 건데 이랬음. 당시 차범근의 후계자로 최순호가 혜성같이 등장했는데 아주 잘했음. 이후 최순호는 황선홍에게 바톤 터치할 때까지 80년대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군림함. 82 스페인 월드컵 예선도 쿠웨이트랑 붙었는데 이 때 엄청난 편파 판정이 있었음. (내 기억에) 우리가 먼저 골 넣었는데 심판놈이 반칙 불어서 골 취소되고 결국 2:0으로 져서 월드컵 진출이 좌절됐음. 그 때도 차범근만 있었다면 우리가 이겼을 것(이라고 생각)임. 당시 아시아권에서 차범근을 막을 나라가 없었음. 82 아시안게임도 조별 예선 탈락했고 84 아시안컵도 조별 예선 탈락했는데 이 때도 항상 내 머리 속에는 '차범근만 있었어도' 였음. 

4. 82 월드컵은 결승전보다 서독과 프랑스의 준결승전이 재밌었음. 전후반 1:1로 비겨 연장전 갔음. 연장전에서 프랑스가 먼저 두 골 넣어서 게임 끝나나 싶었는데 서독이 막판에 두 골을 따라잡아 승부차기까지 감. 그 대회에서 승부차기 룰이 처음 적용됨. 이전 대회까지는 비기면 다음 날 재시합이었음. 하필 이 경기가 그 대회에서 유일한 승부차기 시합이었음. 승부차기에서 서독이 한 명 실축하고 프랑스가 두 명 실축해서 서독이 승리함. 서독이 먼저 실축했는데 그 선수가 우리나라 감독 했던 슈틸리케임. 마지막 키커가 앞에서 언급했던 함부르크의 스트라이커 호르스트 흐루베쉬임. 이 경기는 후에 월드컵 특집 같은 거 할 때 추억의 명승부 단골 메뉴였음.그렇게 극적으로 이기고 결승에 올라갔는데 이탈리아에게 개발림. 새벽에 일어나서 생중계로 봤는데 이탈리아가 날아다님. 이탈리아는 1차 예선에서 3무로 빌빌 매다가 2차 라운드에서 그 대회 최고의 히어로 파울로 로시의 활약으로 아르헨티나, 브라질을 꺾고 4강 진출. 준결승전에서 폴란드를 꺾고 결승 진출. 결승은 이탈리아의 일방 통행. 파울로 로시가 첫 골, 타르델리가 추가골, 알토베리가 쐐기골. 타르델리의 추가골이 빨랫줄 중거리슛이었는데 정말 골 모서리로 기가 막히게 들어갔음. 골넣고 입을 벌리고 양팔을 흔들며 엄청 오버하는 세레모니했음. 서독은 막판에 브라이트너가 프리킥(페널티킥이었나? 가물가물)으로 한 골 겨우 만회.   

5. 86 월드컵 때 차범근이 뛰었지만 전성기를 지난 나이이기도 했고 우리 팀이 월드컵 경험도 없었고 차범근을 제대로 활용할 수준이 못됐음. 불가리아전은 거의 이길 뻔 했는데 비겨서 너무 아쉬웠었음. 불가리아는 2무 1패를 하고도 16강에 진출함. 당시는 승점이 승리 2점, 무승부 1점이고 24팀 출전에 16강 뽑는 거라 가능한 일이었음. 우리가 불가리아만 잡았으면 16강도 가능했음. 이탈리아전 최순호의 중거리 슛은 그 대회 베스트 골 7위에 선정됨.(지금 봐도 멋진 골임. 대한민국 국대 베스트 골 탑텐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함) 베스트 골 1위는 멕시코의 돌려차기슛과 마라도나의 잉글랜드전 중앙선 아래서부터 네 명인가 다섯 명인가 제낀 후 골키퍼까지 제끼고 넣은 그 전설의 슛이 공동으로 선정됨. 당시 우리가 속했던 조는 전 대회 우승팀 이탈리아, 그 대회 우승팀 아르헨티나 그리고 불가리아였음. 이탈리아의 포워드 알토베리는 82월드컵 마지막 골을 넣었는데 86 월드컵 개막전에서 첫골을 넣어 전 대회 마지막 골과 다음 대회 첫골을 넣음. (나만 기억하고 있는 사실임) 아르헨티나전에서 대한민국 월드컵 역사상 첫 골을 넣었던 박창선은 내 친구 삼촌임. 그 집에 자주 놀러갔었음. 

생각나는대로 막 썼는데 글이 너무 길어지네요. 제 기억에 한계가 있으므로 일부 팩트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7-12 16:1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