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황제의 철권 통치
신사의 스포츠이자 자신과의 승부인 골프는 수많은 슈퍼스타를 배출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환히 빛나는 별은 바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였습니다. 축구의 펠레, 야구의 베이브 루스, 농구의 마이클 조던처럼 그 종목의 인기를 전 세계로 확장했다고 일컬어지는 우즈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지배자였습니다.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U.S. 아마추어 선수권을 3년 연속 우승하며 그 재능이 남다름을 유감없이 뽐내던 우즈는 4대 메이저 대회를 석권하는 그랜드 슬램을 최연소로 달성했고 2000년 역대 최저 시즌 평균 타수, 142경기 연속 컷 통과, PGA 올해의 선수상 최다 수상, PGA 상금왕 최다 수상 등 역사에 길이 남을 눈부신 기량을 보여주었습니다. 우즈는 폭발적인 비거리의 장타, 돌부처처럼 침착한 퍼팅, 얼음같이 냉정하면서도 뜨거운 열정을 겸비한 정신력, 관중을 사로잡는 쇼맨십까지 골프 선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 우즈에게 2009년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강력한 스윙을 지탱하던 왼쪽 무릎의 부상으로 장기간 재활을 거친 후 복귀해 변함없는 기량을 보여주었으나 부친상 직후 겪은 프로 첫 컷 탈락 이후 처음으로 컷 탈락을 경험하는 등 메이저 대회에서 아쉬운 성과를 얻은 것입니다. 절치부심한 그는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PGA 챔피언십을 정조준합니다.

2. 공 줍던 소년
“외딴 파도 위 조그만 섬마을 소년은 언제나 바다를 보았네.” 한국 블루스의 거장 이정선의 노랫말처럼 양용은은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섬소년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후 친구가 소개해 준 골프 연습장 아르바이트. 공을 줍는 것이 전부였던 그것이 양용은이 처음 골프를 접한 순간이었습니다.
1991년 군에서 제대한 후 다시 골프 연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그는 프로 선수들의 어깨너머로 골프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비닐하우스에 쓰이는 파이프를 골프채 삼아 피나는 노력을 거듭하던 양용은은 마침내 1996년 KPGA에 입회하며 프로 선수로 데뷔합니다. 2002년 SBS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거머쥔 양용은은 일본 무대에서도 선전을 거듭합니다.
2006년 유럽 무대에 데뷔한 그는 그해 11월 HSBC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합니다. 그가 꺾은 상대는 바로 우즈였습니다. 비록 PGA 주관 대회보다 격이 낮은 무대였지만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던 우즈를 꺾은 것은 고무적인 성과였습니다. 우승 이후 얻은 PGA 투어 참가자격으로 양용은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하기 시작합니다.

3. 한 해를 마무리하는 프로들의 격돌
호주 오픈, ‘롤랑 가로스’ 프랑스 오픈, 윔블던, U.S. 오픈의 4개 대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테니스처럼 골프 역시 4개의 대회를 가장 주목합니다.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인 마스터스 토너먼트, 어려운 난이도의 코스로 유명한 U.S. 오픈, 영국 특유의 악천후가 인상적인 ‘디 오픈’ 브리티시 오픈, 그리고 바로 PGA 챔피언십입니다.
PGA 챔피언십은 4대 메이저 대회 중에서 가장 최근에 시작된 대회지만 프로 선수만 참여할 수 있었기에 그 수준은 여타 대회보다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2019년 PGA가 시청률 부진으로 일정을 앞당기기 전까지 항상 시즌 마지막에 열리는 메이저 대회라는 점에서 많은 골프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대회였습니다.
양용은은 2009년 3월 PGA 혼다 클래식을 우승합니다. 그의 첫 PGA 대회 우승이자 최경주에 이은 두 번째 한국인 선수의 우승이었습니다. 그의 다음 목표는 메이저 대회 우승. 마스터스에선 컷 탈락, U.S. 오픈과 브리티시 오픈은 불참하며 아쉬움을 삼킨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PGA 챔피언십으로 향합니다. 그런 그를 막아선 상대는 마찬가지로 메이저 대회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려 하던 황제 우즈였습니다.

4. 변함없는 기량과 뜨거운 기세
미국 미네소타주의 헤이즐타인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2009 PGA 챔피언쉽. 2006년과 2007년의 연속 우승을 포함해 PGA 챔피언십에서 무려 4번의 우승을 차지한 전적이 있던 우즈는 단연 돋보이는 우승 후보였습니다. 우즈는 대회 첫날 5언더파를 기록하며 단숨에 선두 자리를 차지합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인 그가 얼마나 대회에 집중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화려한 퍼포먼스였습니다. 반면 양용은은 1오버파에 그치며 아쉬운 모습을 보입니다.
둘째 날, 우즈는 2언더파를 기록하며 여전히 선두 자리를 지킵니다. 3홀 연속 버디를 잡아내는 등 압도적인 모습은 여전했으며 2위 그룹과의 격차는 4타차에 달했습니다. 이는 2005년 브리티시 오픈에서 기록한 5타차 이후 메이저 대회 2라운드 종료 최고 격차였습니다. 양용은은 우즈와 마찬가지로 2언더파를 기록하며 공동 9위로 올라서지만, 우승을 노리기에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3라운드에서 양용은은 최고의 모습을 보입니다. 무려 5언더파를 기록하며 공동 2위 자리까지 올라선 것입니다. 안전한 경기 운영으로 1언더파에 그친 우즈와의 격차는 단 2타에 불과해졌습니다. 그러나 우즈는 3라운드까지 선두를 유지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놓친 적이 없는 냉철한 승부사였습니다. 2008년 부상으로 인한 우즈의 불참을 틈타 우승을 차지한 바 있으며 대회 첫날부터 꾸준히 2위 자리를 유지한 아일랜드의 파드레익 해링턴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상대였습니다.

5. 기적을 이룬 호랑이 사냥꾼
승부를 결정지을 대회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양용은과 우즈는 라운딩 파트너로 대회에 임합니다. 또 다른 우승 후보 해링턴은 8번 홀에서 무려 퀸터플 보기를 기록하는 등 크게 부진하며 일찌감치 우승 경쟁에서 탈락합니다. 양용은은 전날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선전을 이어갔고 우즈는 퍼팅에서 고전하며 타수를 늘려갑니다. 결국, 13번 홀을 마친 후 두 사람의 타수는 동률을 이룹니다.
승부의 분수령이 될 14번 홀은 파까지 4타가 허용된 짧은 거리의 홀이었습니다. 양용은과 우즈 모두 단숨에 그린에 공을 안착시키는 것을 노리며 티샷을 시도했지만, 각각 러프와 벙커에 공을 빠뜨립니다. 먼저 벙커를 빠져나와 버디를 노려볼만한 위치에 공을 위치시킨 우즈가 노련하게 위기를 극복하는 듯했던 바로 그때 양용은의 칩샷이 환상적인 궤적을 그리며 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 이글을 기록합니다. 동요한 우즈가 퍼팅에서 실수하며 분위기는 양용은의 것이 되었습니다.
운명의 마지막 18번 홀까지 양용은은 67타, 우즈는 70타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4라운드 합산 1타의 리드를 안은 양용은은 침착하게 공을 그린 위 버디가 가능한 위치에 안착시킨 반면 우즈는 러프에 공을 떨어뜨리며 위기를 맞습니다. 14번 홀과는 정반대의 상황이었지만 수많은 명장면을 연출해낸 바 있는 우즈였기에 아무도 섣불리 승부를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험적인 우즈의 샷이 홀을 외면한 순간 양용은에게 승리의 여신은 환하게 미소짓습니다. 침착하게 버디를 얻어내며 파까지 실패한 우즈를 뒤로하고 한국을 넘어 아시아 선수 최초의 메이저 대회 우승을 얻어낸 것입니다. 제대로 된 골프 교육도 받지 못한 선수가 써 내려간 기적의 시나리오가 해피엔딩을 맞는 순간이었습니다.

6. 후일담 및 근황
양용은은 이후 다시는 PGA에서 상위권을 기록하진 못했으나 유럽 투어와 한국 투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꾸준히 건실한 선수 생활을 이어갑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해설위원으로도 참여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던 양용은은 2018년 4월 만 46세의 나이에 참가한 일본 투어에서 우승을 거두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타이거 우즈는 준우승 이후 불륜 스캔들 및 허리 부상으로 심각한 슬럼프에 빠집니다. 황제의 위용을 잃고 많은 이의 비난을 받던 그는 묵묵히 골프채를 휘두르며 시간을 보냅니다. 부활과 침체를 반복하던 그는 2019년 4월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우승하며 11년 만에 메이저 대회를 우승하는 등 황제의 귀환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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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때늦은 가을 장맛비가 창문을 때리는 요즘입니다. 학우 여러분들은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오늘은 골프 얘기를 글로 써 봅니다. 저희 아버지께선 평소에도 골프를 즐기시는 편입니다. 학우 분들도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글은 다시 야구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6-27 17: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