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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왕의 탄생
2010년 여름 NBA 관계자들과 팬들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리그 최고의 선수 르브론 제임스의 거취였습니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2년 연속 정규 시즌 MVP, 신인왕, 올스타 등 각종 수상을 차지한 슈퍼스타였던 그는 우승에 번번이 실패하던 소속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전력에 불만을 품은 상태였습니다. FA 자격을 얻은 그를 영입하기 위해 수많은 팀이 구애했지만, 클리블랜드 구단 관계자들과 팬들은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팀의 기둥이었던 그의 잔류를 염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간절한 바람은 곧 처절한 실망으로 돌아옵니다. 자신의 거취를 밝히기 위해 TV 쇼 ‘The Decision’을 방송한 제임스는 자신의 재능을 사우스 비치로 가져간다는 말과 함께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합니다. 마이애미엔 이미 리그 최고의 슈팅 가드 ‘Flash’ 드웨인 웨이드와 다섯 손가락에 꼽힐만한 파워 포워드 크리스 보쉬가 존재하는 상황. 올스타급의 선수들이 전성기에 한 팀에서 뭉치는 일은 전례가 없던 것이었습니다.
사전 접촉, 연봉 담합 등의 루머는 기정사실이었고 이적을 발표하는 자리로 요란한 TV 쇼를 택한 모습 역시 고향팀 클리블랜드에 대한 존중이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클리블랜드의 팬들은 제임스의 유니폼을 불태우는 등 배신감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제임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입단식에서 8연속 우승을 차지하겠다는 오만한 발언으로 하늘을 찌릅니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의 뒤를 이을 수 있다는 기대를 받던 ‘King’ 제임스는 리그를 지배하고자 하는 마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2. 우아한 백조의 날갯짓
한편, 슈퍼스타의 떠들썩한 이적에 상관없이 조용히 우승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서부의 강호 댈러스 매버릭스와 ‘Landsknecht’ 디르크 노비츠키였습니다. 독일 최고의 선수 노비츠키는 213cm의 큰 키에도 불구하고 한 마리 백조를 연상케 하는 우아한 페이드어웨이 슛의 소유자로 2007년 정규 시즌 MVP를 수상한 슈퍼스타였습니다.
그가 이끄는 댈러스 역시 리그 내에 손꼽히는 강팀 중 하나였으나 우승에는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노비츠키가 MVP를 수상하며 팀을 서부 컨퍼런스 1위에 등극시킨 2007년에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탈락하며 MVP 트로피를 택배로 받는 것 아니냐는 굴욕적인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노비츠키는 좌절하지 않았고 댈러스 역시 그에 화답했습니다. 열혈 구단주 마크 큐반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댈러스는 2008년엔 노련한 포인트 가드 제이슨 키드, 2009년엔 특이한 슛폼으로 정확한 슛을 구사하는 숀 매리언, 2010년엔 단단한 수비력의 센터 타이슨 챈들러를 차례로 영입합니다. 우승을 위한 팀의 노력에 2010년 FA 자격을 얻은 노비츠키 역시 재계약으로 호응합니다. 동부 컨퍼런스의 마왕과는 상반된, 그러나 우승에 대한 열망은 그에 못지않은 독일 병정의 진격 준비였습니다.
3. 쉽지만은 않았던 정규 시즌
리그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된 마이애미는 공을 손에 쥐어야 빛이 나는 슈퍼스타들의 역할 분배, 빈약한 백업 선수층, 언론과 팬들의 집중 포화 등 시즌 초반 부진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이내 궤도에 오른 제임스와 웨이드, 궂은 역할을 맡은 보쉬, 젊은 나이에도 뛰어난 수비 전술을 선보인 에릭 스폴스트라 감독 등의 힘으로 동부 선두 경쟁에 뛰어듭니다.
반면 댈러스는 시즌 초반부터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줍니다. MVP를 수상한 2007년에 버금가는 노비츠키의 활약, 챈들러의 파이팅 넘치는 수비, 경험 많은 릭 칼라일 감독의 공격 전술 등이 어우러지며 순조로운 시즌을 보냈지만, 노비츠키와 캐론 버틀러의 부상으로 주춤합니다. 노비츠키는 얼마 가지 않아 복귀했지만, 노비츠키 다음으로 많은 득점을 올리던 버틀러의 시즌 아웃은 큰 악재였습니다. 하지만 시즌 중간 구 유고 연방 출신 슛의 달인 페자 스토야코비치와 에너자이저 코리 브루어를 영입하며 다시금 서부 선두 경쟁에 박차를 가합니다.
마이애미와 댈러스는 각각 동부 2위와 서부 3위로 시즌을 마무리합니다. 동부에선 역대 최연소 MVP 데릭 로즈의 활약을 앞세운 시카고 불스가, 서부에선 명장 그렉 포포비치, 역대 최고의 파워 포워드 팀 던컨이 이끄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우승 청부사 필 잭슨 감독, 조던의 후계자이자 역대 통산 득점 3위의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가 버티는 LA 레이커스가 두 팀을 가로막은 상대였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승부는 플레이오프에서 가려지는 법.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의 시선은 NBA로 향합니다.
4. 정상을 향한 험난한 여정
댈러스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상대는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였습니다. 신인왕 출신 브랜든 로이와 건실한 파워 포워드 라마커스 알드리지가 활약하던 포틀랜드는 가벼운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양 무릎 연골이 마모되는 등 심각한 유리몸으로 비운의 커리어를 보낸 로이의 마지막 불꽃은 4차전을 불태우며 승부의 균형을 2승 2패로 맞출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노비츠키와 댈러스의 각오는 1라운드에서 꺾일 만큼 물렁하지 않았습니다. 댈러스는 5차전과 6차전을 연달아 이기며 2라운드에 진출합니다.
2라운드 상대는 2009년과 2010년 2년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했으며 정규 시즌에서도 댈러스를 제쳤던 당대의 강팀 LA 레이커스였습니다. 팀의 에이스이자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 코비와 스페인 출신 거물 파우 가솔은 3연속 우승 ‘3-Peat’을 위해 달려나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기세가 오른 댈러스에게 두려운 상대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노비츠키가 가솔의 수비를 무력화하며 4승 0패로 LA를 탈락시키는 이변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서부의 최강자를 결정하는 컨퍼런스 파이널. 상대는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였습니다. 득점 기계 케빈 듀란트, 다재다능한 포인트 가드 러셀 웨스트브룩, 화려한 개인기의 소유자 제임스 하든 등 향후 모두 MVP를 수상하는 3명의 영건들의 패기는 위협적이었습니다. 젊은 혈기에 맞서 댈러스의 베테랑들은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선보였고 특히 노비츠키가 상대팀의 서지 이바카의 강력한 수비를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댈러스는 4승 1패로 NBA 결승전에 진출합니다.
5. Big 3 VS Big German
파이널에서 마주친 상대는 역시 마이애미였습니다. 엘리트 빅맨 엘튼 브랜드가 버티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케빈 가넷과 폴 피어스, 그리고 레이 앨런의 원조 Big 3가 이끄는 보스턴 셀틱스, 정규 시즌 자신들을 막았던 시카고 불스를 차례로 꺾고 올라온 마이애미는 정규 시즌보다 압도적인 팀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임스 역시 클리블랜드 시절 번번이 앞길을 가로막던 보스턴을 무너뜨리며 NBA 정상을 위한 자신의 야심 가득한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습니다.
마이애미의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댈러스와 마이애미는 접전을 펼칩니다. 노비츠키가 양팀 선수 중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리며 분전하지만, 댈러스는 8점 차로 아쉬운 패배를 당합니다. 설상가상으로 노비츠키가 손가락 힘줄이 끊어지는 심각한 부상을 얻으면서 댈러스의 앞길엔 먹구름이 끼는 듯했습니다. 2차전 역시 마이애미가 시종일관 우세하며 시리즈의 분위기를 가져가려고 하던 그 순간 독일 병정은 투혼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경기 종료 26초 전 역전 3점슛과 경기 종료 5초 전 결승 돌파 득점으로 단 2점 차 승리를 적지에서 얻어낸 것입니다.
첫 원정 2연전에서 1승만 거둔다면 우승할 수 있다는 칼라일 감독의 공언이 무색하게 댈러스는 홈에서 맞은 3차전을 2점 차로 아쉽게 내줍니다. 노비츠키는 또다시 양팀 선수 중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렸지만, 팀의 패배를 막지 못합니다. 엎친 데 덮친 격 이미 손가락 부상을 안고 있던 노비츠키는 열이 39도까지 치솟는 독감에 걸리고 맙니다. 최악의 컨디션 속에서 임한 4차전. 노비츠키는 4쿼터에만 10점을 올리는 등 빛나는 활약으로 단 8점 득점에 그친 제임스를 꺾고 팀의 3점 차 신승을 이끌며 2승 2패로 균형을 맞춥니다.
운명의 5차전은 서로 역전과 역전을 반복하며 치열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노비츠키는 3번째로 양팀 선수 중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리며 시리즈의 분위기를 팀으로 가져옵니다. 반면 제임스는 4차전에 이어 5차전에서도 부진했을 뿐만 아니라 동료 웨이드와 함께 독감에 걸려 힘들어하는 노비츠키를 흉내 내며 비웃는 등 최악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시리즈를 결정지을 수 있는 6차전. 노비츠키는 마지막까지 투혼을 발휘하며 팀에게 NBA 우승을 안겨줍니다. 손가락 부상과 독감으로 만신창이였던 그가 파이널 6경기에서 놓친 자유투는 단 1개였습니다. 상처투성이의 독일 병정은 리그를 지배하고자 한 마왕을 쓰러뜨리고 자신을 믿어준 구단과 팬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선물을 선사합니다.
6. 후일담 및 근황
댈러스는 이후에도 꾸준히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노비츠키의 노쇠화가 심해지며 점점 약체로 전락합니다. 하지만 노비츠키는 팀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2017년 역사상 6번째로 통산 30000득점을 돌파하는 등 NBA의 전설이 됩니다. 그리고 2019년 신성 루카 돈치치,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 등의 젊은 선수들에게 팀의 미래를 맡기고 영욕의 21년 커리어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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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재밌게 읽으셨나요? 이번 글은 강렬한 캐릭터를 가진 선수들 덕분에 술술 써진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주축이 된 선수의 플레이 영상도 글에 담아보려 합니다. 이번 글의 주인공 노비츠키 선수 플레이 영상도 재밌게 봐주세요. 더 좋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6-27 17: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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