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고려대학교 러시아 연극 연구회 제 30회 기념공연 - 연극 [미성년]

3월 10일부터 3월 12일까지 ∥ 한양 레퍼토리 씨어터 ∥ 연출 이우진 ∥ http://미성년.com

  

별 볼 일 없는데다 안주인의 성격까지 더러운 귀족가가 있다. 그리고 부모를 잃은 채 그 집에 얹혀사는 ‘미성년’ 소피아가 있다. 어느 날 죽은 줄 알았던 외삼촌, 스따로둠이 그녀를 찾아오자 모든 상황은 뒤틀린다. 성격 더러운 귀족 쁘로스따꼬바는 상속금의 존재를 눈치 채고 소피아를 자신의 아들과 결혼 시키려 한다. 소피아는 젊은 장교 밀론을 사랑한다. 그녀의 외삼촌 스따로둠은 소피아의 정혼자로 밀론을 지목한다. 이래저래 삶이 혼란스러운 그녀는 외삼촌에게 묻는다.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스따로둠!”

  

18세기 러시아에서 연극 [미성년]이 초연될 때, 일부 관객들은 자신의 고민을 팬레터에 적어 스따로둠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만큼 스따로둠이라는 캐릭터는 매력적이었고, 스따로둠의 말 한마디는 사람들에게 한 줄기 빛과 같았다. 한편으로는 그 당시의 러시아 사회가 소피아의 삶만큼이나 혼란스러웠다고 볼 수도 있겠다. 많은 성인 관객들은 미성년인 ‘소피아’의 처지에 공감했고, 혼란스러운 삶에 해답을 내려주는 스따로둠에 열광했다.

  

시간도 흐르고, 공간도 바뀌었지만 현재의 한국에서도 소피아의 질문은 유효하다. 특히 이제 막 미성년에서 성인의 공간으로 진입한 대학생들에게 이 질문은 강력히 다가오기 마련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대학생들의 스따로둠은 동아리․학회의 선배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TOEIC과 자격증이 그 자리를 대신한 현재 대학생들은 어디서 스따로둠을 찾을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이번 연극 [미성년] 상연을 준비한 고려대학교 러시아연극연구회의 존재는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을 듯하다. 1975년 안톤 체홉의 [청혼] 상연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29회의 공연을 꾸준히 올린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내의 학회 러시아연극연구회가 제 30회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8․90년대, 학생회와 학회의 존재는 대학사회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대학생들은 학생회를 통해 자치를 꿈꾸었고, 학회 속에서 진리를 꿈꾸었다. 고려대학교 러시아연극연구회 역시 러시아 문학을 한국에 알리고, 그 과정을 통해 삶의 진리를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설립되었다. 하지만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대학이라는 공간이 취업을 위한 발판으로 전락하면서 학회의 존재는 사라지거나 변질되어갔다. 대학생들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가치가 아니라 회사가 바라볼 나의 상품가치가 되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러시아연극연구회는 35년이라는 세월 동안 꾸준히 러시아 연극을 상연했다. 푸쉬낀, 고골, 막심 고리끼, 톨스토이 등의 작품을 무대에 선보이며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런 면에서 고려대학교 러시아연극연구회의 제 30회 공연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30회를 맞아 졸업생과 재학생이 합동으로 준비하는 기념공연을 구상했다. 무대와 스크린을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이우진(노문 90, 현 연극배우)이 연출을 맡고, 신문기자․주부․고등학교 교사․풋내기 신입생 등 다양한 방면에서 삶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배우로 출연한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만남이랄까. 그들이 공연을 준비하며 나눈 얘기는 무엇이었을까. 89학번부터 10학번까지 한 자리에 모여 추억과 경험을 공유할 모습을 상상해보니 이번 연극 [미성년]이야 말로 그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공연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겐 한순간 한순간이 연극이었고, 동료 한 명 한 명이 스따로둠 이었으리라.

  

미래를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뭔가 허한 느낌이 들고 있다면 그들의 공연장을 한 번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들의 공연에서는 35년간 유지해 온 학회의 전통과, 21학번 차이의 선․후배가 만들어내는 열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열정은 현재의 우리들에게 무언가 답을 내려줄 수 있을 것만 같다. 연극 제목에 맞추어 미성년자에게 50% 할인을 해준다거나, ‘대국민 계몽연극’ 이라며 자신들을 치장하는 모습에서는 아마추어의 향기가 나다가도, 무대 위 음악을 현악 4중주의 생음악으로 준비하겠다는 포부에서는 프로의 모습도 엿보인다. 아마추어의 열정과 프로의 경험 사이에서 관객들에게 답장을 써 줄 스따로둠의 모습이 기대된다. 한양 레퍼토리 씨어터. 관람료 10,000원.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6-29 22:3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