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몸이 콤플렉스였어요. 저는 남잔데 살이 진짜 안 찌는 체질이거든요. 먹을 거에 대한 욕심도 별로 없고. 작년에 친구랑 룸메였는데, 샤워하고 나온 저를 보더니 멸치가 나타났다! 이러더라구요. 인정하는 부분입니다만, 친구라도 다른 사람이 놀리니까 열받대요. 지는 100키로면서,,, 마지막 자존심을 부리자면 그냥 멸치는 아니고, 그나마 몸집 있는 육수용 멸치, 라고 감히 선언해봅니다. 그나마 키는 컸어요. 참고로 그 친구는 신림으로 떠나 공부 중입니다. 이번에 1차는 뚫었어요. 추카추카.
피티를 한 번 받아 봐야지, 라는 생각은 항상 있었습니다, 돈이 없었지. 피티가 비싸더라구요. 졸업하고 몇 개월 프리로 일하다 끝나서, 돈도 생기고 시간도 생겼어요. 다음 일을 찾지 못해 백수로 어슬렁대다가,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냥 백수보단 근육백수가 간지, 라는 생각에 피티샵 상담을 잡았습니다.
근육맨이 되고 싶어요, 라고 말씀드렸어요.
근육맨은 시작부터 쉽지 않더라구요. 일단 시간은 넘쳤는데 돈이 후달렸어요. 돈이 있긴 했는데, 갓 학생에서 벗어난지라 큰 돈 쓰는 게 무섭더라구요. 노트북이 갑자기 뻗어버리면 어떡하지, 본가에 있는 멍멍이가 갑자기 수술이 필요하면 어떡하지, 등 나중에 돈이 필요할 상황이 마구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주위에 피티가 필요한 사람이 없을까, 로 이어졌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더라구요. 공부 때문에 요즘 허리가 부쩍 아프다는 여자친구를 꼬드겨서 2:1 피티를 끊었습니다. 요즘 가격이 조금 올랐던데, 2:1 피티 현재 가격은 10회에 88만원입니다. 여자친구랑 반띵했습니다.
서론은 이만 하겠습니다.
1.
크게 두 가지 코스가 있습니다. 웨이트트레이닝, 필라테스 이렇게요. 웨이트는 보통 생각하는 몸 만드는 과정이고, 필라테스는 체중/근육량 조절보단 자세교정과 코어강화에 중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각 코스를 맡는 강사분들도 나뉘어 있어요. 2:1은 트레이너 한 분이 배정돼서, 두 가지 코스를 동시에 받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증량을 원헀고 여자친구는 자세교정을 원했는데, 저에게 맞춰서 웨이트를 중점으로 하고 여자친구는 자세교정을 위한 코어근육 강화에 신경을 써주시는 걸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증량과 감량의 운동 방식이 크게 다르진 않다고 하더라구요.
아 그리구 사실 저는 한 달 배우고 그 뒤에는 나 혼자 해봐야지, 라는 생각이었는데 한 달 하고 독립은 좀 어렵다고 하시더라구요. 두 달은 해야 혼자서 알맞게 운동할 정도가 된다고 하셨어요.. 실제로 해보니까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10회로는 헬스장으로 독립하기 좀 부족합니다.
상담 중에 담당 선생님이 바로 정해지는 건 아닙니다. 운동할 수 있는 요일과 시간을 말하면, 며칠 뒤(였나?)에 ㅇㅇㅇ 선생님으로 정해졌다고 연락이 옵니다. 그때 시작일을 정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피티에 들어가는 거죠. <양동철> 선생님이 배정됐습니다. <양동철> 선생님은,,, <임슬옹> 느낌이 약간 있습니다. 닮은꼴,,, 이랄까. 잔소리는 잘 안 하십니다. 제가 아이유가 아니기 때문일까요.
<양동철> 쌤 칭찬을 하자면 되게 친절하십니다. 문 열고 들어가면 밝게 인사해주시구요, 문 열고 나가면 안녕하가세요! 크게 외쳐주십니다. 일단 피티샵 들어가면서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하게 되니까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구 처음 보는 사람이랑 운동하면 어색하지 않을까 했는데, 괜히 걱정했습니다. 일단 힘 쓰느라 어색이고 뭐고 신경쓸 겨를이 없고, 선생님이 워낙 말도 잘 해주셔요. 운동하면서 궁금한 거 있으면 바로바로 알려주시구요. 몸도 좋으십니다. 대회 나간 사진을 봤는데 ㅗㅜㅑ... 이 외에도 칭찬할 게 너무너무 많은데, 지면 관계상 여기서 줄입니다.
2.
처음 피티를 받으러 갔을 때 긴장을 좀 했습니다. 헬스겔러리에서 눈팅을 좀 하고 갔는데, <조진다> 거나, <뒤질 때까지 시키는 악마 트레이너> 등 무시무시한 표현을 목격했거든요. 잘 조져질 수 있을까... 너무 힘든 건 곤란한데... 라는 약한 생각을 하며, 맥도날드 건물로 들어섰습니다. 피티샵은 맥도날드 건물 5층에 있습니다.
첫 날엔 힘든 건 없었습니다. 먼저 제 몸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체크를 받았습니다. 족부, 라고 하던데 운동을 할 때 발의 아치 부분이 살아 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한가 보더라구요. 피티를 받아보니까 선생님에게 조져지는 동안 제일 많이 듣는 소리가 '족부를 살리세여!!!' 였습니다. 족부에 뭔가 피티의 비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거대한 아이패드로 저희가 걷는 모습을 촬영하시곤,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셨는데 지금은 기억이 안 나네요. 제 족부가 이렇게 박살나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해야 된다, 왜냐면 족부가 이렇게 중요하니까, 이런 말씀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엔 프레스봉(?)을 잡고 이렇게 이렇게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도 촬영을 하셔가지구 보여주면서, 제 몸에 어디 근육이 약하고 어디가 좋고 유연성이 어떻고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때는 과연 그렇겠군,,, 하며 끄덕였지만, 다시 돌아보니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네요. 인강을 보고 복습을 안 하면 이렇게 됩니다. 학생이건 직장인이건 복습이 중요합니다. 복습을 생활화했다면 제가 오늘처럼 상사에게 깨지진 않았겠지요.
2.1
피티샵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는 운동기구들을 이용하기 전에, 일단 몸을 푸는 방법을 가르쳐주십니다. 바닥에 요가매트 같은 걸 깔고 폼룰러라고 부르는 거대한 반죽 밀대 모양의 도구로 몸을 요리조리 자극합니다. 자극했을 때 아픈 곳이 근육이 뭉친곳이라고 하셨어요. 폼룰러로 몸을 요리조리 풀다보면 목욕탕에서 세신사님께 때밀릴 때마냥 시워어어언한 기분이 듭니다. 피가 돈다,,, 랄까요.
처음엔 좀 민망합니다. 기구랑 힘겨루고 있는 회원님들 가운데서, 매트 깔구 누워서 폼룰러를 뒹굴뒹굴 굴리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두 번만 해보면 적응이 됩니다. 다른 분들도 다 운동 시작하기 전에 폼룰러로 몸을 풀고 있거든요. 저는 2:1로 받아서, 친구랑 매트 깔고 폼룰러질 하면서 농담하면 꽤 재밌었습니다. 혼자 하면 쪼금 지루한 감이 있습니다. 막 나중에는 몇 단계 건너뛰고 선생님 다 했습니다, 라고 보고를 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죠. 다시 생각해보니 이 상황이랑은 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피티는 한 시간 단위로 진행합니다. 10시 타임이면, 10-11시까지 선생님과 운동을 합니다. 시작하기 10-20분 전에 오셔서 폼룰러로 몸을 풀어주시면, 1시간 동안 꽉 채워서 피티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저희도 그렇게 했습니다. 비싸니께...
2.2
폼룰러 단계를 끝내고 나면 본격적으로 운동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아마 스쿼트였던 것 같아요. 난생 처음 스쿼트를 해봐서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는 게 선생님이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가, 다리를 더 벌리세요. 더 내려가셔야 됩니다, (8kg 아령(?)을 주며) 이걸 들고 하세요, 두 개 남았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해주십니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안 할 수는 없고,,, 힘들고 난감한 시간을 견디고 나면 선생님이 물 마시고 올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면 사막에서 3일 밤낮을 헤메다가 오아시스를 찾아낸 조난자마냥, 정수기로 가게 됩니다. 허벅지에서 보람찬 통증이 느껴집니다. 내가 운동을 하고 있긴 하구나, 라는 실감이 찾아옵니다. 그렇게 몇 차례 더 스쿼트를 하다보면, 내가 잘못된 길을 선택했구나, 라는 후회가 찾아옵니다.
그렇게 첫 날이 끝났습니다. 입고 있던 운동복을 벗고 샤워실에서 씻습니다. 엄청나게 큰 샴푸통과 엄청나게 큰 바디워시가 상비되어 있습니다. 신기한게 피티샵에 있는 모든 건 거대합니다. 아이패드도 거대하고, 노트북도 거대하고, 선생님들 근육도 거대하고, 비용도 거대하고.... 컨셉인가 봅니다. 그렇게 큰 노트북은 살면서 처음 봤습니다.
아 그리고 첫 날에 식단을 짜주십니다. 여자친구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금식, 뭘 먹으세요, 이런 세부적인 식단이 있었고 꼭 지켜야 한다고 강조해주셨습니다. 저도 식단을 짜주셨지만, 살을 찌워야 되는 상황이라 맨날 과자만 먹지 말고 아무거나 일단 많이 먹으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쉽지 않더라구요. 저는 결국 식단은 잘 못 지켰습니다. 같이한 친구는 지금도 지키고 있습니다. 가끔 야식을 먹는데, 선생님께 이르면 재밌습니다. 식단을 쉽게 체크할 수 있는 앱을 알려주시고, 가끔 검사를 받습니다. 안 지키면 혼납니다.
2.3
그 뒤로는 크게 폼룰러 -> 운동 으로 진행되고, 운동을 하나하나 배웁니다. 그렇게 배운 걸 피티 안 받는 날에 피티샵에 가서 <스스로> 운동하시면 됩니다. 기구를 사용한 새로운 운동을 배울 때마다 예의 거대한 아이패드를 들고오셔서 어떤 근육을 단련하는 운동이고, 이 근육은 어떤 움직임을 담당하고, 그래서 이렇게 기구를 활용해야 제대로 단련할 수 있다, 라고 설명을 해주십니다. 의대생이 아니면 평생 보지도 못할 인체해부학(?) 그림을 아이패드에 띄워주시는데, 듣다보면 끄덕끄덕하게 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복습이 중요합니다. 복습을 생활화하지 않은 저는 설명해주시는 부분은 다 까먹었습니다. 그래도 운동하는 방법은 기억하고 있으니 본전은 뽑은 셈, 이라고 생각합니다.
3.
지금 4달째 피티를 받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는 한 달 하고는, 잘 안 갔습니다. 10회를 더 결제하고 나니까 마법처럼 취업이 돼버렸거든요... 지금은 피티 대신 야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대신 제 여자친구는 꾸준히 다니고 있습니다. 여자친구는 운동을 안 좋아했었는데, 피티를 받으면서 재미를 붙였는지 수업이 아닌 날도 빼먹지 않고 성실히 가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효과도 많이 봤다고 합니다. 우선 하루 종일 공부하느라 아팠던 허리, 어께 통증이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운동을 하고 있으니까 평소에도 자세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됐구요. 추가적으로 체중 감량도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처음 체중과 나중 체중을 정확히 밝혀주진 않았습니다. 죽어도 안 말해주겠다고 합니다. 다만, 효과를 본 건 사실이라고 합니다.
저도 처음 한 달 동안은 수업이 없는 날에도 가서 꾸준히 피티를 했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근데 딱 끝내고 샤워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기분이 굉장히 좋습니다. 오늘은 뭐라도 해냈다, 라는 실감이 있습니다. 또 취업을 하게 된 후에 선배님에게 웅비야 너는 하루 종일 의자에서 일어나질 않는다?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평소에 의자에 앉아 있으면 몇 번씩 허리랑 목을 풀어줘야 할 정도로 좀 안 좋았는데, 운동의 효과인지 죙일 앉아 있어도 가뿐하더라구요;; 이점은 솔직히 놀라웠습니다. 아, 그리고 근육맨은 되지 못했습니다. 계속되는 야근과 스트레스 탓에 체중이 오히려 빠졌습니다. 머리가 안 빠진게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4.
피티샵 시설에 대해 말씀을 드리자면, 크지도 않고 너무 작지도 않습니다. 처음엔 헬스장에 비해 좀 작지 않나... 하기도 했는데 서로 기구 사용 겹치지도 않고 괜찮았습니다. 다만 사람이 많을 때 가면 매트 깔 자리가 없거나, 하는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는 주로 밤 10시쯤 피티를 받아서,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상담을 받으신다면 사람이 많은 시간 적은 시간을 물어보시고 시간을 정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자친구 말에 의하면, 최근에 피티샵 기구를 싹 새걸로 바꿨다고 합니다. 런닝머신에 혁신이 일어났다며 흥분해서 뭐라고 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티비를 보면서 뛸 수 있다, 이 정도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5.
개인적으로 2:1 피티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르쳐주실 때 신경을 덜 쓰시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2:1이라서 신경을 더 써주시는 것 같습니다. 친구가 하는 동안 나는 운동을 기다려야 하고, 이런 건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같이 하니까 재밌기도 했구요. 반띵하면 비용도 좀 세이브 됩니다.
운동 방법을 배우는 게 3 이면, 그 운동 방법을 복습하고 혼자 가서 단련하는 게 7 이라고 생각합니다. 뭐든지 그렇겠지만, 감독이 없어도 스스로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6.
피티샵은 평일 이른 아침부터 열고 12시에 닫습니다. 토요일에도 일찍 열지만 이른 시간에 닫습니다. 정확한 시간은 상담 때 물어보시면 친절히 안내해드릴 겁니다. 피티샵에 상담받으러 갈 때 떨렸는데, 전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막 마동석 같은 트레이너님이 나와서 결제하라고 협박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 ㄴㄴ. 몸의 근육만큼 친절하십니다.
*
시간이 나서 주절주절 써봤습니다. 다시 보니까 빼먹은 것도 보이고 이 글이 피티 선택에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네요...;;
요약하자면 <조인성 퍼스널 트레이닝 추천함> 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헬스는 다녀봤지만 피티샵에 다닌 건 처음이었는데, 수강생들만 이용하고 운동기구도 딱 필요한 것만 컴팩트하게 들어 있는 게 좋았습니다.
확실히 돈을 내고, 트레이너랑 약속을 잡고 운동을 하니까 빼먹지 않게 됩니다. 헬스장 끊고 일주일만에 그만두는 사람 있잖아요, 그게 접니다. 그치만 다녔던 한달 동안은 빼먹은 적이 없습니다.
또 헬스장에서 혼자 할 때는 이렇게 하면 되는 건지 의문이 많이 들었습니다. 의욕도 별로 안 생겼구요. 트레이너님에게 배우고 운동을 하면, 자신감이 좀 붙습니다.
트레이너님 몸을 보고 음... 몇 달 뒤면 나도 저렇게 근육맨이 되는 건가,,, 하는 동기부여도 됩니다.
하늘 같은 상사님께 카톡이 와서 급하게 줄입니다. 고파서 파이팅 ㅇ.ㅇ!!!
